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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산산조각 낸 책들, 그래도 다시 읽을 것이다

Bookdot Team
#눈물나는 책#아킬레우스의 노래#리틀 라이프#속죄#우리는 거짓말쟁이였다#폭풍의 언덕#바다 사이 등불#미 비포 유#북 행오버#북톡
해 질 녘 창턱에 놓인, 여러 번 다시 읽어 낡아진 페이퍼백 한 권

몇몇 책만이 낼 수 있는 특정한 종류의 통증이 있다. 그냥 슬픈 것과는 결이 다르다. 넘기고 싶지 않은 페이지를, 그다음에 뭐가 있을지 대충 짐작하면서도 넘기고 막상 알아도 아무 소용없었다는 걸 깨닫는 그 감각이다. 책을 덮는다. 한동안 그대로 앉아 있는다. 바로 누구한테 말하고 싶지는 않다가, 결국은 듣고 줄 사람이면 누구든 붙잡고 다급하게 털어놓게 된다.

단순히 슬픈 책과는 완전히 다른 경험이다. 슬픔은 만들기 쉽다. 인물 하나 죽이고 비 내리는 장면 좀 묘사하면 끝이다. 여기 소개할 책들은 훨씬 느리고 치밀하게 움직인다. 한 사람을, 관계를, 스스로도 품고 있는 줄 몰랐던 희망 하나를 공들여 쌓아 올린 다음, 그걸 조심스럽게 허물어서 상실이 마치 실제로 알던 사람을 잃은 일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여기 모은 건 독자들이 “무엇이 나를 완전히 무너뜨렸느냐”는 질문에 늘 꼽는 책들이다. 각각 정확히 어느 대목이 그 상처를 남겼는지도 함께 짚었다.

왜 우리는 계속 무너뜨리는 책을 찾아 읽는가

이상한 취향처럼 보일 수도 있다. 일부러 우울한 오후를 찾아나서는 사람은 없는데, 독자들은 벌써 상처가 될 걸 알면서도 서로 그런 책을 추천하고 심지어 미리 스포일러를 찾아 읽으며 각오까지 다진다. 잠깐 생각해볼 가치가 있는 지점이다. 자학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기 때문이다.

잘 만든 상실에는 실제 슬픔에는 잘 없는 뚜렷한 윤곽이 있다. 원인이 있고 서서히 쌓이는 과정이 있고 결정적인 순간을 지나 결국엔 표지를 덮으면 끝나는 결말에 다다른다. 결과가 남의 몫이고 전체 흐름이 두 표지 안에 갇혀 있는 이야기 속에서 상실을 겪는 건, 상처받는다기보다 필요했던 감정을 적당한 분량으로 받아 드는 쪽에 더 가깝다. 더 단순하게 보면 그 책이 제 역할을 다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마케팅이나 충격적인 반전 하나만으로는 이런 반응을 절대 만들어낼 수 없다. 진짜 걸린 게 있는 이야기를 쌓아 올리고 그걸 정교하게 지불하는 작가여야 가능하다.

아래 책들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그 자격을 증명한다. 어떤 책은 첫 장부터 상실을 예감하게 만들어놓고도 결국 슬프게 만든다. 어떤 책은 방심한 틈에 일격을 숨겨둔다. 공통점이 있다면 어느 쪽도 지름길로 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잃을 걸 알면서도 사랑했던 이들

어떤 책은 결말을 아주 일찍부터 느끼게 해준다. 비극이 반전으로 튀어나오는 게 아니라 애초에 설정 자체에 짜여 있다. 그런데도 알고 있다고 해서 덜 아픈 건 아니다.

『아킬레우스의 노래』 — 매들린 밀러 (2011)

특별한 재능이랄 게 없는 추방된 왕자 파트로클로스는 펠레우스 왕에게 거둬져 그의 아들 아킬레우스와 함께 자란다. 아킬레우스는 눈부시고 재능 넘치며 책 속 모든 예언이 짧고 영광스러운 삶을 점찍어둔 인물이다. 밀러는 트로이 전쟁 전체를 파트로클로스의 시선으로 풀어내는데, 『일리아스』를 아는 독자라면 이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지 이미 알고 있다. 그 앎이 마지막 장들의 충격을 무디게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더 날카롭게 만든다. 사백 페이지 동안 두 사람이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헌신을 쌓아가는 걸 지켜본 끝에, 결말은 예정대로 도착하고도 여전히 독자를 완전히 무너뜨린다.

『폭풍의 언덕』 — 에밀리 브론테 (1847)

록우드는 요크셔 황무지에 있는, 반쯤 허물어진 음침한 저택에 도착해 이것저것 캐묻고 가정부 넬리 딘은 캐서린 언쇼와 히스클리프의 파괴적인 내력 전체를 풀어놓는다. 너무 격렬해서 집착과 잔인함으로 변해버린 사랑, 그리고 책 중반 캐서린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수십 년 동안 히스클리프가 다음 세대까지 그 잔해로 끌고 들어가는 이야기다. 브론테는 첫 챕터부터 여기서 일어난 일이 좋게 끝나지 않았다는 걸 알려준다. 그러고도 독자에게 그 모든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게 한다.

『위대한 개츠비』 — F. 스콧 피츠제럴드 (1925)

닉 캐러웨이는 제이 개츠비가 소설이 시작되기 훨씬 전 잃어버린 여인 데이지 뷰캐넌을 되찾기 위해 쌓아 올린 재산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피츠제럴드의 문장은 거의 첫 페이지부터 이미 결말을 아는 사람이 회고하는 듯한, 애도에 가까운 어조를 띤다. 개츠비의 파티도, 그의 희망도, 지난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걸 끝내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고집도, 전부 닉이 직접 말로 꺼내기 한참 전부터 독자가 느낄 수 있는 그림자 아래서 흘러간다. 그래서 마지막에 찾아오는 초라하고 쓸쓸한 장례식은 놀라움이 아니라 확인처럼 다가온다.

시작될 기회조차 없었던 사랑

이번엔 결이 다른 아픔이다. 누구도 죽지 않고 딱히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이야기는 결국 함께였어야 할 두 사람이 그러지 못한 채로 끝난다.

『노르웨이의 숲』 — 무라카미 하루키 (1987)

와타나베 도루가 가장 깊이 연결된 사람은 나오코다. 십 대 시절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절친 기즈키의 여자친구였던 나오코는 그 상실에서 끝내 헤어나지 못하고 결국 그 그림자가 그녀마저 삼켜버린다. 무라카미는 소설 전체를 회상 형식으로 쓴다. 첫 페이지부터 독자는 이게 상실로 끝난다는 걸 알고 시작하는 셈이다. 이 책의 아픔은 도루가, 만나기 훨씬 전부터 이미 서서히 멀어지고 있던 사람을 붙잡으려 애쓰다 결국 놓치는 과정을 지켜보는 데 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 앙드레 애치먼 (2007)

엘리오와 올리버의 관계는 이탈리아에서 보낸 여름 한 철로 끝난다. 올리버는 원래 돌아갈 수밖에 없던 삶으로 돌아가고 소설에서 가장 조용하면서도 가장 아픈 대목에서 몇 년 뒤 다시 나타나 두 사람 다 그 여름을 진짜로 지나 보내지 못했다는 걸 확인시켜줄 뿐이다. 여기엔 악당도 사고도 없다. 그냥 시간과 상황이 원래 하는 대로 흘러갔을 뿐인데, 그게 오히려 더 아프게 만든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 로버트 제임스 월러 (1992)

아이오와의 농장 아내 프란체스카 존슨은 가족이 며칠 집을 비운 사이, 그 지역의 지붕 덮인 다리들을 촬영하러 온 사진작가 로버트 킨케이드와 나흘 만에 완전히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무엇을 포기하는 건지 정확히 알면서도, 그와 떠나지 않고 가족 곁에 남기로 한다. 월러는 그 선택의 무게를 남은 페이지 내내 독자에게 고스란히 지운다. 두 사람은 다시 만나지 못하고 로버트는 몇 년 뒤 그녀의 사진을 품은 채 세상을 떠나며 프란체스카는 자신이 죽은 뒤 자녀들이 유품 속에서 발견한 일기를 통해서야 그 사실을 전해 듣는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은 선택 하나로 만들어진 아픔이다.

방심한 틈을 노린 아픔

그런가 하면 아무 경고도 없이 다가오는 책들도 있다. 전혀 다른 걸 기대하고 집어 들었다가, 전혀 대비하지 못한 챕터 하나에서 완전히 뒤통수를 맞는다.

『미 비포 유』 — 조조 모예스 (2012)

루이자 클라크는 사고로 전신마비가 된 전직 엘리트 윌 트레이너를 돌보는 일을 맡는다. 소설의 4분의 3은 로맨스가 으레 해야 할 일들, 그러니까 티격태격하는 대화와 서서히 녹아드는 마음, 불리한 조건을 뚫고 피어나는 사랑을 충실히 그린다. 사랑이 모든 걸 낫게 해줄 거라 기대하며 읽던 독자들은 훨씬 버거운 결말을 마주하게 된다. 윌은 루이자의 뜻을 거스르면서까지, 온전히 자기 판단으로 스스로 삶을 마감하기로 결정한다. 이 결말이 배신인지 모예스가 쓸 수 있었던 유일하게 정직한 선택인지를 두고 독자들 사이에서 여전히 의견이 갈린다. 지금까지도 계속 회자되는 이유다.

『원 데이』 — 데이비드 니콜스 (2009)

에마와 덱스터는 7월 15일이라는 같은 날짜에, 거의 20년에 걸쳐 서로의 안부를 확인한다. 엇갈린 타이밍과 맞지 않는 연애를 거치며 서서히 쌓여온 우정은 결국 두 사람이 마침내 진짜로 함께하는 것으로 매듭지어진다. 니콜스는 그 결실을 독자가 충분히 값지다고 느낄 만큼만 누리게 해준 뒤, 다른 비극들이 흔히 주는 서사적 경고 하나 없이 단 한 장면으로 순식간에 앗아간다. 이 구조 자체가 함정이다. 20년치 쌓아온 이야기인데, 상실은 겨우 한 페이지 만에 끝난다.

『우리는 거짓말쟁이였다』 — E. 록하트 (2014)

케이던스 신클레어는 사고를 겪고 온전히 기억하지 못한 채 가족 소유의 사유섬으로 돌아와, 자신에게 그리고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세 사람 개트, 조니, 미렌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금씩 짜맞춰간다. 마침내 드러나는 진실은 단순한 반전에 그치지 않는다. 그 전까지 나온 따뜻하고 평범한 기억들 전부를 통째로 다시 보게 만든다. 그래서 이 아픔은 두 번 찾아온다. 처음엔 충격으로, 그다음엔 케이던스 스스로 외면할 수밖에 없었던 진실을 재독 중에 정확히 짚어낼 때 다시.

죄책감이기도 한 슬픔

가장 견디기 힘든 형태의 아픔은 나에게 일어난 일에 대한 슬픔이 아니라, 내가 초래했거나 막지 못해서 계속 짊어지고 가야 하는 슬픔이다.

『속죄』 — 이언 매큐언 (2001)

열세 살 브라이오니 탤리스가 던진 거짓 고발은 로비와 세실리아를 갈라놓고 로비를 감옥으로 그다음엔 전쟁터로 내몬다. 매큐언은 그 상처가 수십 년에 걸쳐 불어나는 과정을 소설 나머지 전체에 걸쳐 따라간다. 그러다 마지막에 이르러, 방금 독자가 안도하며 받아들였던 화해의 장면이 사실은 늙은 브라이오니가 자신이 쓰는 소설을 위해 지어낸 것이고 실제로는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 아픔은 두 번 건네진다. 처음엔 원래의 배신에 대해서, 그다음엔 방금 받은 위로가 애초에 진짜가 아니었다는 걸 깨달으면서.

『리틀 라이프』 — 하냐 야나기하라 (2015)

주드 세인트 프랜시스는 소설이 서서히 드러내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짊어지고 살아가면서도, 윌럼과 JB, 맬컴과 나누는 우정을 통해 살면서 처음으로 안전에 가까운 감각을 얻는다. 야나기하라는 단 한 번의 결정적인 반전을 향해 나아가는 대신 상실을 겹겹이 쌓아 올린다. 상실 하나하나가 이미 앞선 상실이 갈라놓은 자리 위에 얹히는 식이다. 그래서 소설 막바지의 슬픔은 하나의 사건이라기보다, 독자가 그 긴 시간 동안 주드 곁에서 서서히, 피할 수 없이 함께 짊어져온 무게처럼 느껴진다.

『바다 사이 등불』 — M.L. 스테드먼 (2012)

톰과 이저벨 셔본 부부는 세 번의 유산을 겪은 뒤 외딴 등대섬에 고립되어 살아간다. 어느 날 죽은 남자와 살아있는 아기가 함께 탄 조각배가 섬에 떠밀려오고 이저벨은 슬픔에 못 이겨 톰의 모든 도덕적 판단을 거스르면서까지 그 아이를 자기 아이로 키우자고 설득한다. 스테드먼은 그 선택과 그로 인한 결과 모두를 견디기 힘들 만큼 무겁게 그려낸다. 이저벨이 왜 그 아이를 도저히 놓을 수 없었는지, 그리고 몇 년 뒤 진실이 밝혀졌을 때 모두가 치러야 하는 대가가 무엇인지 독자는 정확히 이해하게 된다. 이 책에는 악역이 없다. 바로 그 점이 결말을 더 견디기 힘들게 만든다.

이 책들이 그 상처를 정당하게 얻어내는 방식

명치를 때리는 결말이라고 다 같은 값어치는 아니다. 솔직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위에 소개한 책들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그 아픔은 처음부터 끝까지 추적할 수 있다. 챕터를 되짚어보면 작가가 어떻게 거기까지 쌓아왔는지가 다 보인다. 작은 선택들, 초반에 심어둔 인물의 디테일, 지나고 나서야 복선이었다는 걸 알게 되는 장치들. 아무것도 느닷없이 튀어나오지 않는다.

독자를 무너뜨렸다고 주장하는 어떤 책에든 적용해볼 만한 기준이다. 싸구려 충격은 그저 놀라게 하는 데만 기댄다. 아무런 밑작업 없는 죽음, 이야기가 실제로 쌓아온 뭔가를 지불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놀라게 하려고 존재하는 반전 같은 것들. 그런 종류의 아픔은 금방 바랜다. 다시 읽어보면 대개 그 얄팍함이 드러난다. 몇 년이 지나도 독자 곁에 남는 책은 이미 결말을 다 알고 다시 읽어도 여전히 견디는 책이다. 그 파괴력이 한 장면에서 급조된 게 아니라 장면 하나하나에서 정직하게 쌓인 것이었다는 증거다.

이런 책을 읽을 때, 그리고 회복할 때

이 목록의 책 중 하나를 시작하려 한다면, 무엇에 발을 들이는지 미리 알아두는 편이 낫다. 다만 미리 알아둔다고 해서 충격이 그렇게 많이 줄어들지는 않는다는 것도 알아두는 게 좋다. 가능하다면 속도를 조절해도 좋다. 이런 책들은 몇 주에 걸쳐 나눠 읽기보다 며칠 안에 몰아 읽는 편이 나을 때가 많다. 감정의 흐름이 끊기지 않아야 결말이 제대로 와닿기 때문이다.

다 읽고 나면 다음 감정적으로 무거운 책으로 넘어가기 전에 실제로 텀을 두는 게 좋다. 앞의 책을 아직 소화하지도 못한 채 곧바로 다음 책으로 넘어가면 두 경험 다 무뎌지는 경우가 많다. 논픽션이나 이미 결말을 아는 편안한 책처럼, 아예 결이 다른 걸 중간에 끼워 넣는 편이 억지로 곧장 넘어가는 것보다 훨씬 낫다.

그리고 어떤 책을 읽었다는 사실뿐 아니라 그 책이 나를 어떻게 무너뜨렸는지도 기록해둘 가치가 있다. 마음을 산산조각 낸 책들은 대개 몇 년 뒤, 그 감정을 다시 견딜 수 있을 만큼 시간이 지났을 때 다시 펼치게 되는 책이기도 하다.


나를 무너뜨린 책과 정확히 무엇이 그 상처를 남겼는지 기록해보자. Bookdot은 읽은 책뿐 아니라 그 책이 실제로 나에게 남긴 감정까지 함께 기록하게 도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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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사람들은 왜 무너질 걸 알면서도 일부러 그런 책을 골라 읽나요?
잘 짜인 상실은 그냥 나쁜 소식과는 다르다. 형태를 갖춘 슬픔이고, 그걸 의미와 결말로 감싸주는 이야기 안에 담겨 있다. 결과가 나 아닌 다른 사람의 것이고 두 표지 사이에 갇혀 있는 만큼, 이야기 속에서 상실을 겪는 건 상처받는다기보다 오히려 마음이 정리되는 경험에 가깝다. 그리고 단순하게 보면 그 책이 제 역할을 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런 반응은 억지로 만들어낼 수 없고, 대개는 작가가 충격만 노린 게 아니라 장면 하나하나를 쌓아 올려 값을 제대로 치렀다는 뜻이다.
그냥 슬픈 책과 '마음을 산산조각 낸' 책은 뭐가 다른가요?
슬픈 책은 비극적인 사건 하나를 던져놓고 원래 슬픈 일이니 슬퍼하라고 요구하는 정도로도 성립한다. 반면 마음을 산산조각 내는 책은 인물과 그들이 걸린 것을 촘촘하게 쌓아 올려서, 상실이 막연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느껴지게 만든다. 나쁜 일이 일어나서 슬픈 게 아니라 실제로 알던 사람을 잃은 것 같은 감정이 든다. 결말을 이미 알고 다시 읽어도 그 무게가 그대로인지가 진짜 시험대다. 세월이 지나도 남는 책은 다 그 시험을 통과한 책들이다.
완전히 무너뜨린 책을 다 읽고 나면 다음엔 뭘 읽어야 하나요?
그냥 가벼운 책보다는 결이 아예 다른 책이 낫다. 논픽션이나 결말이 확실히 매듭지어지는 미스터리, 혹은 결말을 이미 아는 편안한 재독용 책 정도가 좋다. 앞의 책을 아직 소화하지도 못했는데 감정적으로 무거운 책을 곧바로 집어 들면 오히려 두 책 다 제대로 못 느끼는 경우가 많다. 다음 무너뜨릴 책으로 넘어가기 전에 하루 이틀 정도는 텀을 두는 편이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