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도서

모든 걸 의심하게 만든 책들

Bookdot Team
#머리를 뒤흔든 책#피라네시#나를 찾아줘#나를 보내지 마#다크 매터#파이트 클럽#믿을 수 없는 화자#정신을 흔드는 책#북톡#심리 소설
어둑한 복도에 문 하나가 살짝 열려 빛이 새어 나오는 모습

몇몇 책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특정한 종류의 어지러움이 있다. 놀라는 것과는 다르다. 놀라움은 순식간에 지나가지만 이건 훨씬 느리게 온다. 이백 페이지쯤 지났을 때 문득, 여태 딛고 서 있던 바닥이 애초에 없었다는 감각이 든다. 세 챕터 전에 읽은 한 문단으로 돌아가 다시 읽어본다. 분명 그때는 다른 뜻이었을 거라 확신하면서. 아니었다. 그저 그때는 아직 필요한 정보를 받지 못했을 뿐이고, 애초에 이 책은 그 정보를 일찍 내줄 생각이 없었다.

반전과는 다른 경험이다. 반전은 독자를 놀라게 하려고 설계된 한순간이고, 일단 터지고 나면 그 놀라움도 끝이다. 여기서 소개할 책들은 훨씬 다루기 어렵고 훨씬 오래간다. 플롯보다 더 근본적인 무언가, 그러니까 뭐가 진짜인지, 누가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 무엇이 한 존재를 사람으로 만드는지를 뒤흔들어놓고, 그것도 알아채기 힘들 만큼 서서히 해서, 눈치챌 즈음이면 독자는 이미 거기 연루돼 있다. 반전을 즐기고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면 그만인 게 아니다. 그 폭로가 앞선 이백 페이지 자체를 완전히 다른 것으로 바꿔버리기 때문이다.

독자들에게 무엇이 모든 걸 의심하게 만들었냐고 물으면 늘 꼽는 책들을 모았다. 정확히 무엇이 발밑에서 빠져나갔는지도 함께 짚었다.

왜 우리는 자꾸 스스로를 무너뜨리는 책을 찾는가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상한 욕구다. 대부분의 독자는 앞뒤가 맞는 이야기를 기대하며 책을 편다. 설정, 갈등, 해소, 퍼즐이 딱 들어맞을 때의 그 쾌감. 그런데 몇 년이 지나도 회자되는 책들, “내 사고방식을 바꿔놓은 책” 목록에 늘 오르는 책들은 오히려 딱 들어맞기를 거부한 책인 경우가 많다. 뭔가를 일부러 풀지 않은 채 남겨두거나, 풀긴 풀어도 거기까지 오는 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모든 걸 의심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풀어버린다.

매력의 일부는 지적인 데서 온다. 현실을 의심하게 만드는 책은 평범한 플롯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한다. 사건의 두 버전을 동시에 붙들고, 너무 빨리 하나로 정리하지 않은 채 그 불편함 안에 머무르라고 요구한다. 이야기를 그냥 따라가는 것과는 확실히 다른 몰입이고, 이런 걸 좋아하는 독자는 정말 좋아한다. 깔끔한 결말이 주지 못하는 무언가를 긁어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감정적인 층위도 있다. 이건 자칫 과소평가하기 쉽다. 무엇이 진짜인지를 흔드는 책은 그 기계장치 아래에서, 평소엔 잘 받지 않는 질문 하나를 던진다. 내가 확신하는 것들 중 실제로 뭔가를 떠받치고 있는 건 얼마나 될까. 스스로에게 늘 들려주던 이야기에 여태 눈치채지 못한 구멍이 있었다면, 내 자아라는 감각은 어떻게 될까. 쉽게 떨쳐지지 않는 불편함이고, 어떤 독자에게는 그게 바로 소설이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래 책들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독자를 흔든다. 물리적 세계 자체를 뒤트는 책도 있고 화자를 뒤트는 책도 있다. 무엇이 어떤 존재를 사람으로 만드는지 묻는 책도 있다. 어느 쪽이든 지름길로 가지는 않는다.

현실 자체를 재조립하는 책들

세상이 이상하다고 말해주는 데 그치지 않고, 나름의 논리를 갖춘 세계를 아예 새로 지어서 독자가 더는 의심하지 않게 만들어놓고, 바로 그 순간 뒤통수를 치는 책들이다.

『피라네시』 — 수재나 클라크 (2020)

화자는 ‘집’이라 불리는, 조각상으로 가득한 끝없는 방들로 이루어진 공간에 산다. 아래층은 밀물에 잠기고 위층엔 구름이 흘러다닌다. 그는 이 집의 지형과, 자신과 함께 이곳에 산다고 믿는 몇 안 되는 존재들 — 그중엔 그가 ‘그 사람’이라 부르는 이도 있다 — 에 대해 정성스럽게 일기를 쓴다. 클라크는 독자를 그의 내적 논리에 너무나 부드럽게, 완전히 스며들게 만든다. 그래서 그가 실제로 누구인지, 이 집이 실제로 무엇인지에 대한 진실이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할 때, 그건 반전이라기보다 갇혀 있던 한 사람의 일기를 판타지 소설로 착각하고 읽어온 것 같은 아찔한 깨달음에 가깝다.

『하우스 오브 리브스』 — 마크 Z. 다니엘레프스키 (2000)

조니 트루언트는 어느 죽은 남자가 남긴 원고를 발견한다. 안쪽이 바깥쪽보다 몇 인치 더 넓은 집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를 분석한 글인데, 그 몇 인치의 차이는 이후 복도가 되고 끝이 없어 보이는 계단이 된다. 다니엘레프스키는 이 공포를 학술적인 각주와 부서진 활자 배열 속에 파묻는다. 그래서 책 자체가 그 집처럼 작동하기 시작한다. 글자는 페이지 위를 소용돌이치고 여백은 무너지고, 독자는 자신이 이 불가능한 공간을 읽고 있는 건지 그 공간 안으로 직접 빨려 들어가고 있는 건지 헷갈리게 된다. 조니 본인의 정신마저 각주 안에서 흐트러지기 시작할 즈음엔, 이야기와 그걸 읽는 행위 사이의 경계는 이미 거의 사라진 뒤다.

『소멸의 땅』 — 제프 밴더미어 (2014)

이름 없는 생물학자가 열두 번째 원정대에 합류해 엑스 구역으로 들어간다. 수십 년째 이유도 없이 조용히 뒤틀려온 해안 지역으로, 돌아오지 못한 원정대도 있고 완전히 달라져서 돌아온 원정대도 있고, 자신이 누구였는지 잊은 채 돌아온 원정대도 있다. 밴더미어는 엑스 구역을 통상적인 방식으로는 끝내 설명해주지 않고, 화자인 생물학자의 진술 역시 안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믿기 어려워진다. 주변 환경이 그녀 자신을 직접 바꿔놓고 있다는 의심 때문이다. 공포의 정체는 괴물이 아니다. 지금 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화자가 더 이상 이 여정을 시작했던 바로 그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점점 짙어지는 의혹이다.

귓가의 목소리를 의심하게 만드는 책들

이번엔 결이 다른 어지러움이다. 세계는 그대로 멀쩡하다. 믿을 수 없는 건 그걸 들려주는 사람이고, 얼마나 심각하게 믿을 수 없었는지는 이미 다 읽어버린 뒤에야 알게 된다.

『케빈에 대하여』 — 라이오넬 슈라이버 (2003)

에바 카차도리언은 남편 프랭클린에게 보내는 일련의 편지를 쓴다. 아들 케빈과 그가 저지른 고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 그리고 케빈이 갓난아기였을 때부터 이어져온 불편하고 복잡한 모자 관계를 설명하려는 시도다. 슈라이버는 에바를 믿음직하면서도 완전히는 믿을 수 없는 화자로 빚어낸다. 스스로를 채찍질하듯 엄마로서의 실패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태도가 그녀를 설득력 있게 만드는데, 바로 그 설득력 때문에 그날 실제로 누가 살아남고 누가 살아남지 못했는지를 둘러싼 소설의 마지막 반전이 첫 번째 배신 위에 또 한 겹 얹히는 두 번째 배신처럼 다가온다.

『나를 찾아줘』 — 길리언 플린 (2012)

닉 던의 아내 에이미가 결혼 5주년 기념일에 사라지고, 소설은 수사 과정을 그리는 닉의 현재 시점 서술과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이 서서히 무너져온 과정을 담은 에이미의 옛 일기를 번갈아 보여준다. 같은 관계를 다룬 두 버전인데 거의 아무것도 일치하지 않는다. 플린은 두 화자 모두에게 독자의 공감을 얻게 해준 다음 차례로 그걸 도로 빼앗는데, 일기가 중반부에서 뒤집히는 순간은 에이미에게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바꿔놓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믿을 수 없는 화자라는 개념 자체를, 첫 페이지부터 독자를 걸려들게 하려고 던진 도발로 다시 규정해버린다.

『파이트 클럽』 — 척 팔라닉 (1996)

불면증에 시달리며 카탈로그로 채워진 삶에 마비된 이름 없는 화자가 타일러 더든을 만난다. 매력적이고 거침없고, 화자가 원하도록 배운 모든 것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인물이다. 둘은 맨주먹 파이트 클럽을 만들고 이는 점점 더 크고 폭력적인 무언가로 번져간다. 팔라닉은 이 잘못됨을 아주 일찍부터, 그저 문체처럼 읽히는 방식으로 심어두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더 이상 문체로만 읽히지 않는다. 타일러가 화자와 실제로 어떤 관계인지 드러나는 순간, 두 사람이 함께했다고 여겨졌던 모든 장면을 곧바로, 불편하게 다시 계산할 수밖에 없게 된다.

무엇이 사람을 사람으로 만드는지 묻는 책들

이 어지러움의 가장 견디기 힘든 버전은 뭐가 진짜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누가 진짜로 여겨질 자격이 있는지, 그리고 사람과 사람을 닮도록 만들어지거나 길러진 존재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는지의 문제다.

『나를 보내지 마』 — 가즈오 이시구로 (2005)

캐시 H.는 목가적인 영국 기숙학교 헤일셤에서 보낸 어린 시절과, 성인이 된 뒤 토미·루스와 나눈 우정을 들려준다. 이시구로는 헤일셤이 실제로 어떤 곳인지를 캐시 본인조차 별로 의식하지 않는 디테일들을 통해 아주 서서히 드러내서, 독자는 대개 인물들이 그 진실을 입 밖에 내기도 전에 먼저 알아차리게 된다. 학생들은 장기 기증을 위해 길러지는 복제인간들이다. 이 소설의 진짜 불편함은 그 설정 자체가 아니라, 캐시가 그걸 얼마나 완전히 받아들이고 있는지, 그녀도 주변의 누구도 자신들 앞에 놓인 삶을 거부할 생각을 진지하게 해보는 일이 얼마나 드문지에 있다. 다 읽고 나면 뭐가 진짜인지가 아니라, 우리 각자가 주어진 역할을 얼마나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사는지를 되묻게 된다.

『클라라와 태양』 — 가즈오 이시구로 (2021)

클라라는 태양열로 움직이며 관찰력이 뛰어난 AF, 즉 인공 친구다. 만성 질환을 앓는 십 대 소녀 조시의 친구로 구입된다. 이시구로는 이야기 전체를 클라라의 시점에서 서술하는데, 그녀의 헌신과 태양을 중심으로 스스로 빚어낸 사적인 믿음 체계, 조시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기능마저 기꺼이 희생하려는 태도는 사랑에 가까운, 어쩌면 책 속 몇몇 인간보다도 더 사랑에 가까운 무언가로 읽힌다. 이 소설이 답을 강요하지 않으면서 조용히 계속 맴도는 질문은 이거다. 사랑처럼 행동하는 것과 사랑 자체를 가르는 그 구분이, 실제로 압박을 받을 때도 버틸 수 있는가.

내가 내린 모든 선택을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책들

그리고 현실이나 정체성을 직접 건드리지 않는 책들도 있다. 대신 내가 하지 않은 모든 선택 속에 존재하는 또 다른 나, 지금 살고 있는 삶과 나란히 흘러가는 모든 삶을 노린다.

『다크 매터』 — 블레이크 크라우치 (2016)

평범한 삶에 만족하던 물리학 교수 제이슨 데슨이 총구 앞에서 납치되어, 몇 년 전 갈림길에서 아주 다른 진로를 택한 버전의 세계에서 깨어난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자신이 만들었던 상자가 알고 보니 갈라져 나온 우주들 사이를 오갈 수 있는 장치였고, 그 우주 하나하나가 그가 거의 기억도 못 하는 어느 분기점에서 다르게 흘러간 자신의 삶이다. 크라우치는 다중우주를 일종의 애도에 더 가까운 것으로 바꿔놓는다. 제이슨은 무한히 갈라진 자기 자신들 사이를 헤치며 책 내내 질주하는데, 다들 그가 실제로 가진 단 하나를 조금씩 부러워하면서도 그가 그걸 계속 지키게 놔두려 하지는 않는다.

『리커전』 — 블레이크 크라우치 (2019)

‘허위 기억 증후군’이라 불리는 사건들을 쫓는 형사와, 의식을 과거의 기억 속으로 되돌려 보낼 수 있는 의자를 만든 신경과학자가 어떤 기술을 사이에 두고 얽힌다. 일단 세상에 풀리고 나면 사람들이 자기 타임라인을 새로 써버리고, 그 과정에서 다른 모든 사람의 타임라인까지 뒤엉키게 만드는 기술이다. 크라우치는 리셋 위에 또 리셋을 쌓아가면서 인과관계 자체가 선택 가능한 것처럼 느껴지게 만드는데, 이 책의 감정적 중심은 그 기술 자체가 아니라 무한히 가능한 삶들 중 어떤 기억이 정말로 지킬 가치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있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 매트 헤이그 (2020)

자기 인생이 실패의 연속이었다고 확신하는 노라 시드는 죽고 나서 삶과 죽음 사이에 있는 어느 도서관에 놓인 자신을 발견한다. 그 끝없는 서가에 꽂힌 책 한 권 한 권이, 그녀가 다른 직업을 택했거나 다른 사람을 만났거나 다른 나라에 살았다면 펼쳐졌을 또 다른 인생이다. 헤이그는 노라가 삶을 하나씩 갈아 신어보게 하는데, 그때마다 이전에 떠나온 삶보다 겉보기엔 늘 더 나아 보인다. 그러다 이 책은 조용히 진짜 하고 싶은 말을 꺼낸다. 후회란 결국 한 번도 실제로 걸어보지 않은 길들을 두고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일 뿐이고, 안에서 느끼는 것만큼 정확한 경우는 드물다는 것.

이 책들의 공통점

현실을 뒤트는 설정이라고 다 그 어지러움 값을 제대로 하는 건 아니다. 뭐가 이 책들을 다른 것들과 갈라놓는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위에 소개한 책들 모두 그 불안정함을 아주 일찍부터 심어두고, 나름의 내적 논리를 제대로 갖춰서 쌓아 올린다. 피라네시의 집에는 규칙이 있고, 엑스 구역에는 설명은 안 되지만 일관된 생태가 있고, 에이미 던의 일기는 독자가 나중에야 그 의도를 이해하게 되는 방식으로 짜여 있다. 마지막에 가서 놀라게 하려고 즉흥적으로 끼워 넣은 싸구려 반전은 하나도 없다.

머리를 뒤흔들었다고 주장하는 어떤 책에든 적용해볼 만한 기준이다. 다 읽고 앞부분으로 돌아가보면 작가가 그 반전까지 정확히 어떻게 쌓아왔는지 보여야 한다. 처음엔 그냥 평범해 보였다가 두 번째 읽을 땐 완전히 다르게 다가오는 디테일들 말이다. 정보를 감추기만 하고 심어두지는 않은 책은 다시 읽으면 대개 얄팍하게 느껴진다. 놀라움 밑에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오래 남는 책은 다시 읽어도 효과가 줄어들지 않는 책, 오히려 전체 구조가 한눈에 보이면서 더 깊어지는 책이다.

이런 책을 읽을 때, 그리고 회복할 때

화자든 배경이든, 심지어 지금 읽고 있는 게 어떤 장르의 책인지에 대한 스스로의 가정이든, 뭔가를 의심할 준비를 하고 들어가는 게 좋다. 그리고 그 의심을 너무 일찍 해소하려 하지 말고 그냥 들고 있어보자. 몇몇 책은 천천히, 집중해서 읽을 때 더 값어치를 한다. 단서가 워낙 미묘해서 플롯을 향해 대충 훑어 읽으면 놓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나를 찾아줘』나 『파이트 클럽』 같은 책은 오히려 긴 호흡으로 빠르게 읽는 편이 낫다. 그래야 반전을 미리 눈치챌 여유를 독자에게 너무 많이 주지 않는다.

다 읽고 나면 곧바로 다음 책, 특히 또 다른 어지러운 책으로 넘어가기 전에 그 결말과 함께 잠시 머물러보는 게 좋다. 이런 책들은 덮은 뒤에도 하루 이틀 정도는 머릿속에서 계속 자리를 다시 잡는데, 그게 채 끝나기도 전에 또 하나를 얹으면 대개 둘 다 효과가 배가되기보다 서로 흐릿해진다. 화자를 믿을 수 있고 순서대로 진실을 들려주는, 구조가 안정적이고 선형적인 책이 그다음으로 읽기엔 훨씬 낫다.

그리고 이런 책을 읽었다는 사실뿐 아니라 정확히 무엇이 무너졌는지도 기록해둘 가치가 있다. 모든 걸 의심하게 만든 책들은 한 번 읽고 책장에 꽂아두는 책이 아닌 경우가 많다. 이번엔 눈을 뜨고, 알면서도 다시 한번 속아 넘어가려고 일부러 다시 펼치게 되는 책들이다.


현실감을 흔들어놓은 책과 정확히 무엇을 의심하게 만들었는지 기록해보자. Bookdot은 읽은 책뿐 아니라 그 책이 실제로 나에게 남긴 질문까지 함께 기록하게 도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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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진짜 반전이 있는 책과 그냥 놀랍기만 한 책은 뭐가 다른가요?
반전은 한순간에 지나가지만, 정말로 머리를 뒤흔드는 책은 마지막 장뿐 아니라 그 앞의 모든 페이지를 다시 읽게 만든다. 잘 만든 작품은 불안정함을 아주 일찍부터 심어둔다. 믿을 수 없는 화자, 원래대로 작동하지 않는 배경, 정체성이나 기억에 대한 질문 같은 것들이다. 그래서 바닥이 꺼지는 순간이 와도 되짚어보면 그게 어떻게 쌓였는지 다 보인다. 싸구려 반전은 그냥 놀라게 할 뿐이지만, 진짜배기는 책 전체를 다른 방식으로 다시 읽게 만든다.
사람들은 왜 자신을 불안하게 만드는 책을 좋아하나요?
통제된 혼란에는 나름의 즐거움이 있다. 작가가 뭘 하는지 정확히 안다고 믿으면서 풀리지 않는 퍼즐을 받아 드는 경험이다. 이런 책들은 정체성과 기억, 무엇이 진짜인지에 대한 질문을 진지하게 던지고, 이런 걸 즐기는 독자는 대개 모든 실마리가 깔끔하게 풀리지 않아도 그 애매함 자체를 견디는 걸 좋아한다. 불편함이 곧 핵심이다. 그 책이 단순히 한나절 기분만 흔든 게 아니라 실제로 생각하는 방식을 바꿔놨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머리를 완전히 헤집어놓은 책을 읽고 나면 다음엔 뭘 읽어야 하나요?
다음엔 구조가 안정적이고 선형적인 책을 고르는 게 좋다. 평범한 미스터리나 편안한 재독용 책, 흐름이 뚜렷한 논픽션 같은 것들이다. 현실을 뒤흔드는 책은 독자의 집중력과 화자에 대한 신뢰를 많이 요구하는데, 그런 책을 곧바로 또 쌓아 읽으면 각각의 인상이 또렷하게 남기보다 서로 뒤섞여버리는 경우가 많다. 결말을 보고 나서 하루쯤 그냥 그 여운에 머물러보는 것도 좋다. 이런 책들은 덮은 뒤에도 계속 뭔가를 새로 드러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