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반 판타지는 분량을 대하는 방식이 다른 장르와 좀 다르다. 로맨타지는 결말을 향해 쌓여가고, 스탠드얼론 판타지는 한 권 안에서 자기 완결적으로 끝난다. 반면 어반 판타지는 대개 탐정 소설처럼 짜여 있다. 매 권 새로운 사건이 벌어지고, 그 밑에서 관계 하나가 천천히 끓어오르며, 작가가 계속 쓰는 한 마법 체계와 조연들의 디테일도 끝없이 쌓인다. 어떤 시리즈는 5권으로 딱 멈추고, 어떤 시리즈는 첫 권이 나온 지 15년이 지나도 계속 신간이 나오는데 독자들은 매번 다시 찾아온다.
그래서 정주행 계산법도 다른 장르와는 좀 다르다. “언제 끝나나”보다는 “이 세계에 얼마나 오래 머물고 싶은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 아래는 딱 그 기준으로 정리한 시리즈 여섯 편이다. 확실하게 끝을 보는 5권짜리 주말 코스부터, 지금도 계속 이어지는 마라톤까지 폭이 넓다. 다들 붙여 읽을 때 진가가 드러나는데, 어반 판타지가 워낙 디테일을 쌓아가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2권에서 던져둔 규칙 하나가 7권에서야 제 몫을 하고, 별생각 없이 지나친 조연이 세 권쯤 뒤에 중요한 인물이 되어 있고, 슬로 번 로맨스는 지난 권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고 있어야만 제대로 읽힌다.
굳이 한 가지 덧붙이자면, 이 장르가 유독 정주행에 잘 맞는 이유는 거의 모든 작품이 한 인물의 시점, 그것도 작중 시간으로 몇 년씩 이어지는 1인칭으로 쓰인다는 점이다. 텀을 길게 두고 읽으면 그 화자만의 목소리, 은근한 농담, 방어적인 태도의 결이 흐려진다. 붙여서 읽으면 어느 순간 친구의 말투처럼 익숙해지는데, 작가들이 노리는 효과도 바로 그거다.
케이트 대니얼스: 종말 이후 애틀랜타와 제대로 쌓은 슬로 번
일로나 앤드루스—부부가 함께 쓰는 필명이다—의 『매직 바이츠』(2007)는 마법과 과학기술이 번갈아 주도권을 쥐는 애틀랜타를 배경으로 시작한다. 어느 쪽이 우위인지는 예측 불가능한 주기로 뒤바뀌고, 그 파도 한 번에 마천루가 무너지고 달리던 차가 멈춰 서기도 한다. 케이트 대니얼스는 경찰이 감당 못 하는 마법 관련 사건을 처리하는 용병이고, 입은 거칠고 자기 과거는 철저히 숨기는 인물이다. 본편 10권은 그녀가 애틀랜타 변신족 무리를 다스리는 비스트 로드 커런과 점점 얽혀가는 과정을 따라간다.
케이트 대니얼스가 이 장르에서 돋보이는 지점은 중심 로맨스를 쌓는 방식의 인내심이다. 케이트와 커런의 관계는 둘 다 서로를 밀어내지 않게 되기까지 여러 권에 걸쳐 조금씩 진전되고, 그 기다림이 아깝지 않은 건 시리즈가 이 관계를 플롯과 절대 떼어놓지 않기 때문이다. 케이트가 자기 방어적인 데는 출생의 비밀이 얽혀 있고, 그 비밀이 드러나는 순간 시리즈 전체가 다시 짜인다. 애틀랜타 변신족 무리와 마법 길드 사이의 정치극도 로맨스와 별개로 매 권 실질적인 긴장감을 만든다.
정주행 플랜: 처음 세 권(『매직 바이츠』, 『매직 번즈』, 『매직 스트라이크』)만으로도 주말 하나는 꽉 채운다. 10권 전체는 2주 정도 잡는 게 맞고, 후반부 전개가 초반에 심어둔 디테일에 크게 기대고 있어서 시간을 들일 가치가 충분하다.
머시 톰슨: 오래 끌고 가는 변신족 정비공 이야기
패트리샤 브릭스의 『문 콜드』(2006)는 워싱턴주 트라이시티스에서 폭스바겐을 고치는 정비공 머시 톰슨을 소개한다. 그는 워커라는 희귀한 변신족이기도 한데, 코요테로 변할 수 있고 늑대인간들 사이에서 자랐지만 그들 무리에 온전히 속하지는 못한다. 이 이방인 위치가 시리즈 전체를 움직이는 엔진이다. 머시는 인간 세계와, 옆집에 사는 늑대인간 무리를 이끄는 애덤 하웁트만의 팩과, 마을 건너편 뱀파이어 무리 사이를 오가는데,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모두에게 쓸모 있는 존재가 된다.
본편은 이제 열두 권을 훌쩍 넘겼고, 브릭스는 이 장르에서 보기 드문 인내심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 머시와 애덤의 관계는 초반 여러 권에 걸쳐 진전되다 매듭지어지고, 시리즈는 어느 한쪽 로맨스 못지않게 팩 내부 정치와 뱀파이어 법, 요정 종족과의 조약에도 공을 들인다. 같은 세계관을 배경으로 다른 커플을 다루는 외전 시리즈 **『알파 앤 오메가』**는 본편과 나란히 읽어도 되고 본편을 다 읽은 뒤 이어서 읽어도 무방하다.
정주행 플랜: 처음 네 권(『문 콜드』부터 『아이언 키스트』까지)이 하나의 완결된 흐름을 이루고, 긴 주말 정도면 감당할 수 있다. 본편 전체를 다 읽으려면 2~3주는 필요하고, 나란히 진행되는 알파 앤 오메가까지 더하면 그보다 더 걸린다.
옥토버 데이: 끝나지 않기를 바라게 되는 마라톤 시리즈
시넌 맥과이어의 『로즈마리 앤 루』(2009)는 작게 출발한다. 절반은 페어리, 절반은 인간인 사립탐정 옥토버 “토비” 데이는 경쟁자의 손에 잉어로 변해 14년을 갇혀 지내다 모든 걸 잃은 채 돌아오고, 억지로 떠밀리듯 살인 사건에 얽히면서 다시 샌프란시스코 페어리 정치판에 발을 들인다. 놀라운 건 맥과이어가 이 설정을 얼마나 멀리까지 끌고 왔는가다. 시리즈는 이미 본편 열다섯 권을 훌쩍 넘겼고 지금도 꾸준히 신간이 나오는데, 그러면서도 이야기가 늘어지기는커녕 오히려 점점 더 촘촘해지고 있다.
끝이 정해져 있지 않은 정주행을 원한다면 이 시리즈가 정답이다. 오래 붙잡고 있는 독자일수록 보상이 커지는 구조인데, 맥과이어가 초반에 심어둔 사건의 결과를 몇 권 뒤에 터뜨리는 방식으로 쓰기 때문이다. 토비와 그의 유사 가족—타이볼트, 메이, 루아다그—의 관계는 수십 건의 사건을 거치며 서서히 깊어지고, 페어리 자체의 정치 구조도 개별 미스터리 못지않게 흥미로운 축으로 자리 잡는다.
정주행 플랜: 전체를 주말 하나로 끝내려는 시도는 하지 않는 게 좋다. 애초에 그렇게 읽는 사람이 없다. 처음 네 권(『로즈마리 앤 루』부터 『레이트 이클립시스』까지)이 입문 코스로 알맞고, 꾸준히 읽으면 대략 일주일 정도다. 여기까지 읽고 나면 몇 년을 두고 계속 따라갈 독자인지 아닌지 스스로 알게 된다.
아이언 드루이드 연대기: 웃으면서 몰아 읽는 주말용 시리즈
케빈 헌의 『하운디드』(2011)는 애리조나주 템피에서 가짜 이름으로 작은 오컬트 서점을 운영하는 2천 살 아일랜드 드루이드 애티커스 오설리번을 소개한다. 곁에는 말하는 아이리시 울프하운드 오베론이 있는데, 가장 친한 친구이자 코믹 릴리프 담당이다. 헌의 어반 판타지는 신화 뒤섞기에 유독 진심이다. 북유럽 신들, 이집트 신들, 페어리 궁정, 아메리카 원주민 영혼들이 같은 현대 애리조나 안에 공존하고, 원래 만날 일이 없었을 판테온들이 한자리에 억지로 모여 부딪히는 과정 자체가 재미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이 시리즈의 톤은 케이트 대니얼스나 머시 톰슨보다 훨씬 가볍고 빠르다. 오베론의 속마음은 주로 소시지 타령과 서점에 못 들어가는 억울함인데, 이탤릭체로 처리된 그 독백이 책 전체를 경쾌하게 끌고 간다. 본편 9권은 다른 시리즈보다 분량도 짧다. 슬로 번을 여러 권에 걸쳐 견딜 자신은 없지만 신화와 분위기는 챙기고 싶은 독자에게 맞는 선택이다.
정주행 플랜: 여기서는 진짜 주말 안 완주가 가능하다. 분량이 짧고 속도감 있게 짜여 있어서 붙여 읽기 좋고, 지금 애티커스를 죽이려는 신이 어느 판테온 소속인지 놓치지 않으려면 어차피 이어서 읽는 편이 낫다.
알렉스 베루스: 클리프행어 걱정 없는 완결 시리즈
베네딕트 자카의 『페이티드』(2012)는 캠던 마켓에서 작은 마법 용품점을 운영하는 예언가 알렉스 베루스를 소개한다. 그는 위험한 옛 스승에게서 겨우 도망친 뒤로 런던 마법사 협의회들의 레이더에 걸리지 않으려 몇 년째 조심스럽게 살아가고 있다. 강력한 아티팩트 하나가 여러 세력의 관심을 그에게로 끌어당기면서, 알렉스는 그토록 피해 다니던 세계로 다시 끌려 들어간다. 자카의 문체는 드레스덴 파일즈와 가까운 누아르 톤이다. 힘에서 밀리는 주인공, 매 권 커지는 사건, 조금씩 늘어나는 아군과 적. 다만 확률을 다루는 예지 마법이라는 독자적인 마법 체계가 이 시리즈만의 색을 만든다.
이 시리즈가 정주행 목록에 들어갈 이유는 명확하다. 완결됐다는 것. 2012년부터 2021년까지 열두 권이 나왔고, 자카가 처음부터 계획해둔 결말로 정확히 끝난다. 아직 완결되지 않은 시리즈는 절대 줄 수 없는 게 바로 이 완결성이다. 다음 권을 몇 년씩 기다릴 필요도, 언제 풀릴지 모르는 클리프행어를 붙잡고 있을 필요도 없다.
정주행 플랜: 열두 권 전부라면 2주. 다만 후반부로 갈수록 전개 속도가 붙어서 대부분의 독자가 예상보다 빠르게 완주한다.
디 아더스: 5권, 주말 하나, 군더더기 없음
앤 비숍의 『리튼 인 레드』(2013)는 이 장르에서 흔히 쓰는 힘의 구도를 뒤집는다. 변신족과 뱀파이어를 비롯한 초자연적 존재들—통틀어 “디 아더스”—은 인간들 사이에 숨어 사는 소수자가 아니라, 이 세계를 실제로 소유한 아주 오래된 지주에 가깝고, 인간은 그들의 용인 아래에서만 살아간다. 도망 중인 예언자(피부를 베면 미래가 보이는 카산드라 상그)인 메그 코빈은 레이크사이드라는 작은 도시의 디 아더스 구역으로 흘러들어가고, 그곳을 관리하는 경계심 강한 늑대 변신족 사이먼 울프가드가 그를 받아준다.
본편은 정확히 5권(『리튼 인 레드』부터 『에치드 인 본』까지)으로 완결된다. 비숍은 이 이야기를 완전히 매듭짓는다. 풀리지 않은 실마리도, 미결된 로맨스도, 나올지 안 나올지 모르는 6권을 기다릴 필요도 없다. 같은 세계관에 다른 인물들을 배치한 외전 3부작 **『더 월드 오브 디 아더스』**도 있어서 본편을 다 읽고도 이 세계를 더 원하는 독자에게 확장판을 제공하지만, 원래의 5권만으로도 완전히 독립적으로 성립한다.
정주행 플랜: 이 목록에서 가장 깔끔하게 주말 하나, 길어야 일주일 안에 끝나는 코스다. 5권짜리에 확실한 결말, 그리고 6권 없이도 완결감을 주는 메그와 사이먼의 슬로 번까지 갖췄다.
어반 판타지 정주행, 이렇게 준비하면 좋다
몇 가지 실전 팁이다. 이 장르는 준비 없이 뛰어들면 놓치는 게 많다.
- 완결 여부부터 확인하자. 알렉스 베루스나 디 아더스처럼 완결된 시리즈는 클리프행어 걱정 없이 정주행할 수 있다. 옥토버 데이나 케이트 대니얼스처럼 연재 중인 시리즈도 정주행할 가치는 똑같지만, 따라잡은 다음 기다릴 시간까지 각오해야 한다.
- 연대기 순서가 아니라 출간 순서로 읽자. 특히 맥과이어 같은 작가는 앞선 권의 반전을 이미 안다는 전제로 뒤쪽 권을 쓴다. 순서를 건너뛰면 원래 순서대로 읽을 때 터지게 설계된 반전이 미리 새어버린다.
- 누가 누군지 기록해두자. 오래 이어진 어반 판타지는 조연 수도 상당하다. 짧게라도 독서 기록을 남겨두면 세 권쯤 지나서 “이 사람이 누구였더라” 하고 다시 검색하는 수고를 던다.
- 1권만 읽고 시리즈 전체를 판단하지 말자. 앤드루스도, 브릭스도, 비숍도 세계관과 인물이 자리 잡기 전인 1권은 이후 권들보다 눈에 띄게 거칠다. 최소 3권까지는 읽어보고 판단해도 늦지 않다.
- 정해진 속도가 아니라 자기 페이스를 따르자. 위에 적은 “정주행 플랜”은 하루 몇 시간을 읽는다는 가정 아래의 대략적인 기준일 뿐, 반드시 지켜야 할 마감이 아니다. 시간을 통째로 비우는 이유는 정해진 완주선을 넘기 위해서가 아니라, 흐름을 놓치게 만드는 중간의 방해 요소들을 없애기 위해서다.
어반 판타지 정주행 TBR
- 5권짜리 주말, 확실한 결말을 원한다면: 앤 비숍의 『리튼 인 레드』—완결된 디 아더스 시리즈
- 웃으면서 빠르게 읽고 싶다면: 케빈 헌의 『하운디드』—신화 뒤섞기가 가장 재미있는 아이언 드루이드 연대기
- 제대로 쌓은 슬로 번 로맨스를 원한다면: 일로나 앤드루스의 『매직 바이츠』—케이트 대니얼스와 종말 이후 애틀랜타
- 클리프행어 걱정 없는 완결 시리즈를 원한다면: 베네딕트 자카의 『페이티드』—열두 권으로 계획된 결말까지
- 긴 호흡으로 오래 즐기고 싶다면: 패트리샤 브릭스의 『문 콜드』—열두 권을 훌쩍 넘기고도 계속되는 머시 톰슨
- 시리즈가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독자라면: 시넌 맥과이어의 『로즈마리 앤 루』—본편만 열다섯 권을 넘긴 옥토버 데이
주말 하루를 비우고,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분량을 골라, 하나를 끝까지 밀어붙여보자. 어반 판타지는 띄엄띄엄 읽을 때가 아니라 붙여서 읽을 때 가장 잘 작동하는 장르다. 세계관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상태로 다음 권, 또 다음 권으로 넘어갈 수 있을 만큼 가깝게 붙여 읽어야 한다.
열다섯 권이 넘는 시리즈 한복판에서도 어디까지 읽었는지 정확히 알 수 있도록, Bookdot으로 어반 판타지 정주행 기록을 남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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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 주말에 정주행하기 좋은 어반 판타지 시리즈는?
- 확실하게 끝을 볼 수 있는 시리즈를 원한다면 앤 비숍의 『디 아더스』가 가장 좋은 선택이다. 5권으로 완결되고 다음 권을 기다릴 걱정도 없다. 빠르게 읽히는 쪽을 원한다면 케빈 헌의 아이언 드루이드 연대기도 괜찮다. 본편 9권이 다른 시리즈보다 짧고 속도감 있게 쓰여 있어서 읽는 속도가 빠르다면 주말 안에도 충분히 가능하다.
- 옥토버 데이 시리즈는 어떤 순서로 읽어야 하나요?
- 출간 순서대로, 『로즈마리 앤 루』부터 시작하는 게 맞다. 시넌 맥과이어는 토비 데이의 세계관과 인간관계를 누적시켜 가며 쌓아 올리기 때문에 순서를 지켜 읽을 때 훨씬 잘 읽힌다. 뒤쪽 권들은 앞선 사건이 남긴 결과를 계속 끌어오는데, 그 사건을 오래전이 아니라 최근에 읽었을 때 여운이 훨씬 크게 다가온다.
- 어반 판타지 시리즈는 왜 다른 판타지 시리즈보다 훨씬 긴가요?
- 대부분의 어반 판타지 시리즈는 탐정 소설과 비슷한 구조로 짜여 있다. 매 권 새로운 사건이 등장하고, 그 밑으로 관계와 세계관이 계속 이어지는 식이다. 이런 에피소드형 구조는 미스터리 시리즈처럼 정해진 결말 없이 얼마든지 이어질 수 있다. 출판사 입장에서도 매년 새로운 단행본을 내는 것보다 고정 독자층이 있는 장기 시리즈가 훨씬 안정적인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