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타지 독자 중에 한 권만 읽고 마는 사람은 드물다. 이 장르는 애초에 유예된 만족감 위에 세워져 있다. 전쟁과 마법 체계, 주인공을 죽이고 싶어 하는 궁정 전체를 배경으로 슬로 번 로맨스를 몇 권에 걸쳐 늘여 놓았으니, 계속 읽어야만 그 설계가 제대로 작동한다. 한 달씩 텀을 두고 로맨타지 시리즈를 읽다 보면 어느 세력이 누구를 배신했는지, 누가 누구에게 피의 빚을 졌는지, 남자 주인공의 벽이 실제로 얼마나 허물어졌는지 다 놓치게 된다. 반대로 쉬지 않고 이어서 읽으면 이 모든 구조가 원래 설계된 방식대로 딱 들어맞는다.
그러니까 이 장르에서 정주행은 단순히 즐거운 선택지가 아니라 구조적으로 필요한 독서법에 가깝다. 3권이든 5권이든 8권이든, 슬로 번 로맨스가 쌓아 올리는 긴장감은 앞선 권들의 감정적 장면을 독자가 여전히 기억하고 있어야 제 힘을 발휘한다. 그리고 그 기억은 계절 하나를 넘겨가며 띄엄띄엄 읽을 때보다 긴 주말 한 번에 몰아 읽을 때 훨씬 또렷하게 남는다.
아래는 실제로 달력에서 얼마나 많은 날을 빼야 하는지를 기준으로 정리한 로맨타지 시리즈 일곱 편이다. 주말 하루로 끝나는 것부터 진짜 2주를 각오해야 하는 것까지 있다. 이미 장르의 상징이 된 작품도 있고 아직 완결되지 않은 채 계속 확장 중인 작품도 있다. 어느 쪽이든 가깝게 붙여 읽을수록 보상이 크다.
세라 J. 마스: 어디서 시작해서 얼마나 멀리 갈 것인가
로맨타지 정주행 가이드에서 마스를 빼놓을 수는 없다. 다만 그가 써낸 두 시리즈는 성격이 꽤 다르니, 지금 자신이 어떤 걸 시작하려는 건지 미리 알아두는 편이 좋다.
『가시와 장미의 궁정』(『가시와 장미의 궁정』/『안개와 분노의 궁정』/『날개와 파멸의 궁정』/『서리와 별빛의 궁정』/『은빛 불꽃의 궁정』)은 로맨타지를 하나의 대중 장르로 끌어올렸다고 가장 많이 꼽히는 시리즈다. 인간 사냥꾼 페이레는 숲에서 늑대를 죽였다가 페어의 땅 프리티안으로 끌려가고, 탬린 아래에서 시작된 감금은 라이샌드가 등장하면서 훨씬 복잡한 무언가로 바뀐다. 2권 『안개와 분노의 궁정』은 캐주얼 독자를 진성 팬으로 바꿔놓는 지점으로 꼽히는데, 1권과 2권 사이 관계의 무게 중심이 넘어가는 그 전환은 오랜 텀 없이 기억이 생생한 채로 넘어갈 때 훨씬 강하게 다가온다.
정주행 플랜: 3부작 본편만이면 4~5일, 후속 두 권까지 더하면 그보다 길어진다. 1권과 2권 사이 톤과 위기감이 크게 도약하는 만큼, 이 구간은 텀 없이 이어서 읽는 쪽이 확실히 낫다.
『왕좌의 유리』(전 8권, 『왕좌의 유리』부터 『재로 이루어진 왕국』까지)는 더 길고 서사시적인 쪽이다. 자객 셀레나 사도티엔의 출발점은 부패한 왕에게서 자유를 얻기 위해 참가하는 시합이지만, 후반 권으로 갈수록 신과 고대 마법, 여러 동맹 왕국이 얽힌 대륙 규모의 전쟁 한복판에 서게 된다. 로맨스 축은 ACOTAR보다 훨씬 더디게 쌓이는데, 그만큼 마침내 도착했을 때의 보상은 훨씬 오래 벼려진 것이라 더 크게 느껴진다.
정주행 플랜: 8권 전부라면 2주는 잡아야 한다. 후반부로 갈수록 정치와 마법 체계가 상당히 복잡해지므로, 권 사이 텀이 길어지면 분위기만이 아니라 플롯 이해 자체에서 손해를 본다.
용과 전쟁, 그리고 인터넷을 뒤흔든 클리프행어
레베카 야로스의 엠파이리언 시리즈(『포스 윙』/『아이언 플레임』/『오닉스 스톰』)는 마스를 한 번도 읽어본 적 없는 독자들까지 로맨타지 장르로 끌어들인 시리즈다. 전설적인 장군의 딸 바이올렛 소렝게일은 용과 유대를 맺지 못하면 죽는 전쟁 대학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구역에 강제로 배정되고, 어머니에 맞서 반란을 이끌었던 아버지를 둔 제이든 리오르슨이 장르가 요구하는 온갖 복잡한 사연을 처음부터 다 장착한 채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다. 야로스는 전력 질주하듯 쓴다. 챕터는 짧고 사건은 끊임없이 전진하며, 『아이언 플레임』 마지막 장의 클리프행어는 3권 출간 소식이 뜨자마자 독자들이 곧장 예약 주문 버튼을 누르게 만들었다.
이 시리즈는 아직 완결되지 않은 채 계속 쓰이고 있다는 점도 정주행 계산에 영향을 준다. 현재까지 3권이 나온 상태고, 3권의 반전들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위해 앞선 두 권을 재독하고 넘어가는 독자도 많다.
정주행 플랜: 3권 전부 주말 하루면 된다. 챕터가 짧고 전개가 거침없어서 자연스럽게 멈출 지점을 찾기가 오히려 어렵다.
신앙과 침묵, 그리고 금지된 헌신
제니퍼 L. 아르멘트라우트의 **『피와 재에서』**는 ACOTAR를 끝낸 뒤 곧바로 다음 시리즈를 찾는 독자에게 가장 많이 추천되는 작품이다. 포피는 신에게 봉헌된 존재인 메이든이다. 자유롭게 말하는 것도, 호위 외의 누군가에게 손이 닿는 것도 금지되어 있다. 그런 그녀를 지키도록 배정된 호크는 왕국의 종교 질서 전체를 뒤흔들 만큼 무거운 비밀을 숨기고 있다. 아르멘트라웃은 지금 이 장르에서 로맨틱 긴장감을 가장 잘 쌓아 올리는 작가 중 한 명이고, 포피와 호크 사이에 강제된 거리감 덕분에 초반의 작은 접촉 하나하나가 나중에 벽이 무너질 때 훨씬 크게 다가온다.
본편은 4권이고, 프리퀄 듀올로지 『불꽃 속의 그림자』와 『육신 속의 불』이 따로 있어서 본편을 다 읽고도 이 세계관을 더 원하는 독자에게 확장판을 제공한다.
정주행 플랜: 본편 4권에 4~5일. 프리퀄 듀올로지는 본편 전이든 후든 상관없다. 본편의 이야기를 이어가는 게 아니라 배경을 채워주는 쪽이라 순서에 크게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
슬로 번을 좋아하는 독자를 위한 신화 재해석
스칼렛 세인트 클레어의 **『어둠의 손길』**은 하데스와 페르세포네 신화를 신들이 인간들 사이에 조용히 섞여 사는 현대 배경으로 옮겨온다. 페르세포네는 어머니가 누구인지 숨긴 채 평범한 삶을 꾸리려 애쓰는 저널리즘 전공 학생이다. 전 6권으로 이루어진 이 시리즈는 신화 로맨타지라는 하위 장르를 대표하는 사례가 됐고, 이후 비슷한 시도가 시장에 쏟아졌다. 세인트 클레어의 문장은 마스나 아르멘트라웃보다 가볍고 빠른 편이라, 종이 위 숫자로만 보면 부담스러운 6권이라는 분량이 실제로 읽을 땐 그렇게까지 무겁게 느껴지지 않는다.
정주행 플랜: 5~6일. 책이 빠르게 넘어가는 만큼 이 시리즈에서 부담스러운 건 밀도가 아니라 단순히 권수 쪽이다. 정치적 동맹 관계를 붙잡고 씨름해야 하는 시리즈는 아니다.
첩보와 원수, 그리고 둘 다 원치 않았던 결혼
대니엘 L. 젠센의 **『브리지 킹덤』**은 긴장감 있는 전제로 시작한다. 공주가 적국 왕과 결혼해 그 왕국을 무너뜨릴 정보를 캐내라는 임무를 받고 시집을 가는 것이다. 그가 전혀 계산에 넣지 않은 건 그 정보 수집이라는 임무 자체가 복잡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젠센은 유독 플롯을 짜는 데 강한 작가고, 전 4권짜리 이 시리즈는 로맨스와 별개로 서서히 쌓이는 상호 존중을 관계의 토대로 세워 나간다. 이 목록에서 가장 촘촘하게 짜인, 군더더기 없는 시리즈 중 하나다.
정주행 플랜: 주말 하루면 편하게 끝난다. 4권이 빠르게 읽히고 플롯도 깔끔해서 권 사이에 다시 복기할 필요가 거의 없다.
지옥의 왕자들과 복수극
케리 매니스칼코의 **『사악한 왕국』**은 19세기 시칠리아와 악마 신화를 엮어, 살해된 쌍둥이 언니의 복수를 꿈꾸는 에밀리아가 지옥의 일곱 왕자 중 한 명과 얽히는 이야기를 그린다. 이 시리즈가 흔한 이차 세계 로맨타지와 구별되는 지점은 매니스칼코가 그려내는 장소의 구체성이다. 시칠리아 마을의 음식과 신앙, 가족 구조가 악마들이 등장하는 플롯을 뻔한 배경이 아니라 실제로 살아 있는 공간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3부작으로 완결되어, 이 목록에서 가장 짧게 끝낼 수 있는 완주 코스 중 하나다.
정주행 플랜: 3~4일. 긴 주말 안에 넉넉히 들어가는 분량이면서도, 서둘러 읽어치우기보다는 음미하며 읽을 만큼 분위기가 살아 있다.
구원 서사 없는 페어 궁정 정치
홀리 블랙의 크루얼 프린스 3부작(『크루얼 프린스』/『위키드 킹』/『퀸 오브 낫씽』)은 페어 궁정 로맨타지의 익숙한 설정을 가져오되, 장르가 흔히 기대하는 구원 서사를 완전히 걷어낸다. 부모가 살해된 뒤 하이 코트 오브 페어리에서 자란 인간 소녀 주드는 누구에게 구조되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자신을 경멸하는 궁정 안에서 스스로 힘을 움켜쥐어 가고, 카던 왕자와의 얽히고설킨 적대적 관계는 보호가 아니라 서로에 대한 조작 위에 세워져 있다. 블랙의 3부작은 이 목록의 다른 작품들보다 더 짧고 더 날카로우며, 결말도 장르의 일반적인 정리와는 거리가 멀다. 출간되고 몇 년이 지나도 계속 회자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주행 플랜: 주말 하루. 3권짜리에 궁정 암투가 쉴 새 없이 몰아치고, 중심 관계의 긴장감이 워낙 팽팽해서 대부분의 독자가 권 사이에 텀을 두고 싶어 하지 않는다.
주말이 아직 남았다면 두 편 더
위의 시리즈 중 하나를 다 해치우고도 시간이 남았다면 알아둘 만한 시리즈가 둘 더 있다.
셸비 마후린의 『서펀트 앤 도브』(『서펀트 앤 도브』/『블러드 앤 허니』/『갓즈 앤 몬스터즈』)는 자기 마녀 집단으로부터 숨어 지내는 루와, 루 같은 존재를 죽이겠다고 맹세한 마녀 사냥꾼 레이드를 짝지어 놓는다. 상황이 떠민 정략결혼이 이 이야기의 엔진이고, 마후린은 세계관을 그저 배경으로 두는 대신 적에서 연인으로 가는 로맨스 아래에 실제로 어두운 마법 체계를 탄탄히 쌓아 올린다. 3권으로 완결되며, 이어서 읽는 게 가장 좋다. 마지막 권이 2권에서 심어둔 실마리를 강하게 끌어오는데, 그 실마리가 기억에 생생할 때 훨씬 잘 읽힌다.
레베카 로스의 『디바인 라이벌즈』(『디바인 라이벌즈』/『루스리스 바우즈』)는 이 목록에서 가장 순한 선택지다. 전쟁으로 찢긴 세계에서 마법이 걸린 타자기를 통해 편지를 주고받는 두 경쟁 저널리스트가 서로 모른 채 한 글자씩 서로에게 빠져드는 이야기다. 긴 시리즈가 아니라 2부작이라 이 목록에서 가장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고, 수위도 낮고 서간체에 가까운 서정적인 문장이라 『사악한 왕국』이나 『피와 재에서』처럼 더 어두운 작품을 읽고 난 뒤 잠시 숨을 돌리기에 좋다.
로맨타지 정주행, 이렇게 준비하자
실제로 낼 수 있는 시간에 맞춰 시리즈를 고르자. 엠파이리언 시리즈, 『브리지 킹덤』, 『사악한 왕국』, 크루얼 프린스 3부작은 전부 주말 하루짜리로 설계됐다. 반면 『왕좌의 유리』와 『피와 재에서』 세계관 전체를 다 읽으려면 이틀이 아니라 일주일에서 2주 정도의 여유가 필요하다.
프리퀄과 외전은 의도적으로 배치하자. 『피와 재에서』의 프리퀄 듀올로지도, ACOTAR의 외전 소설집 『서리와 별빛의 궁정』도 본편 전이든 후든 상관없이 읽힌다. 본편 줄거리 이해에 필수는 아니니, 어디에 끼워 넣을지 고민하느라 정주행 자체를 미루지는 말자.
권수가 아니라 속도로 부담을 가늠하자. 『어둠의 손길』 6권은 『왕좌의 유리』 4권보다 오히려 빨리 읽힌다. 세인트 클레어의 챕터가 마스의 챕터와는 다른 속도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권수가 많다고 무조건 더 오래 걸리는 시리즈라고 단정하지 말자.
오래 기다린 후속권 앞에서는 재독을 고려하자. 엠파이리언 시리즈처럼 아직 완결되지 않은 채 계속 나오는 경우, 많은 독자가 『오닉스 스톰』을 시작하기 전에 『포스 윙』과 『아이언 플레임』을 다시 읽어 정치적 실마리와 배신 관계를 기억 속에 새로 정리해둔다. 발간 텀이 긴 다른 시리즈에도 그대로 적용해볼 만한 습관이다.
세계가 아직 생생할 때 진행 상황을 기록해두자. 로맨타지 시리즈는 궁정 간 동맹과 피의 빚, 슬로 번으로 쌓이는 긴장감을 수백 페이지, 여러 권에 걸쳐 계속 추적하라고 요구한다. 2권에서 숨이 턱 막혔던 그 장면도 5권쯤 가면 다른 장면들과 뒤섞여버리기 마련이다. Bookdot을 쓰면 한 권을 덮는 순간 바로 기록을 남기고 기억이 생생할 때 평점을 매길 수 있으며, 정주행 도중 어디까지 읽었는지 놓치지 않고 확인할 수 있다.
다음 로맨타지 시리즈에 완전히 빠져들 준비가 됐다면, 매 권의 기록을 남기고 기억이 생생할 때 반응을 적어두고 정주행 중간에 흐름을 놓치지 말자. Bookdot은 시리즈를 진지하게 읽는 독자를 위한 독서 기록 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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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 주말에 정주행하기 좋은 로맨타지 시리즈는?
- 대니엘 L. 젠센의 『브리지 킹덤』이 가장 현실적인 완주 코스다. 하나의 정략결혼을 축으로 촘촘하게 짜인 4권짜리 시리즈라 주말 이틀을 온전히 비운다면 충분히 끝낼 수 있다. 조금 더 길어도 괜찮다면 케리 매니스칼코의 『사악한 왕국』도 3권으로 완결되고 추진력이 강해서 이틀 정도면 넉넉하다.
- 『가시와 장미의 궁정』과 『포스 윙』 중 어느 쪽부터 읽어야 하나요?
- 두 시리즈는 세계관이 이어지지 않으니 순서 자체는 상관없다. 다만 읽는 리듬은 꽤 다르다. 『가시와 장미의 궁정』은 5권에 걸쳐 궁정 정치와 세계관 구축에 공을 들이며 천천히 쌓아 올리는 쪽이고, 엠파이리언 시리즈(포스 윙 이후)는 훨씬 빠르게 달리며 액션 비중이 크다. 로맨타지에 처음 들어오는 독자라면 그 주에 원하는 독서 속도에 맞춰 시작 지점을 고르면 된다.
- 로맨타지 시리즈는 왜 로맨스가 이렇게 천천히 진행되나요?
- 속도 조절 자체가 장르의 핵심 설계다. 여러 권에 걸쳐 슬로 번 긴장감을 유지하는 동안 작가는 정치적 위기와 마법 체계, 대립하는 세력을 로맨스 위에 겹겹이 쌓을 수 있고, 그 결과 커플이 마침내 이어질 때 세계가 두 사람에게 가한 모든 무게가 함께 실린다. 여러 권을 이어서 읽어야 이 슬로 번이 늘어지는 게 아니라 제대로 쌓인 것처럼 느껴진다. 오래 텀을 두고 읽으면 그사이 긴장감이 식어버리지만, 이어서 읽으면 매 권 쌓인 감정이 그대로 누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