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 소설을 밤 11시에 덮고 나면 이상한 갈증이 남는다. 방금 해결된 사건 말고, 그 형사의 나머지 삶이 궁금해진다. 무너지고 있는 결혼 생활, 상사와의 오랜 갈등, 아직 용서하지 못한 그 사람. 단편 스릴러는 퍼즐과 해답을 준다. 반면 시리즈는 퍼즐과 해답에 더해 계속 돌아가게 되는 한 사람을 안겨준다. 몇 권쯤 읽고 나면 그의 커피 취향과 약점을 내 것보다 더 잘 알게 된다.
이게 미스터리·스릴러 시리즈 정주행만의 매력이고, 판타지나 로맨스를 정주행할 때와는 결이 다르다. 줄거리는 매번 새로 시작한다. 새 사건, 새 시신, 새 용의자들. 하지만 감정의 뼈대는 그대로 쌓여간다. 네 번째 권쯤 되면 더 이상 범인이 누구인지만 궁금한 게 아니다. 이 형사가 언젠가 누군가를 곁에 들일 수 있을지, 그게 더 궁금해진다.
이 글에서는 그렇게 쌓여가는 재미를 위해 만들어진 시리즈 10편을 장르별로 소개한다. 마음 편히 즐기고 싶은 날엔 코지 미스터리를, 거칠고 집요한 걸 원하면 하드보일드를, 담요를 끌어당기고 싶을 만큼 서늘한 걸 원하면 북유럽 누아르를 골라보길.
코지 미스터리: 부담 없이, 따뜻하게
《목요일 살인클럽》 — 리처드 오스먼
《목요일 살인클럽》 / 《두 번 죽은 남자》 / 《놓친 총알》 / 《마지막까지 죽지 않은 악당》 | 전 4권
켄트의 한 은퇴자 마을에서 조이스, 엘리자베스, 이브라힘, 론 네 사람이 매주 목요일 모여 미제 사건을 취미 삼아 들여다본다. 그러다 어느새 진짜 살아있는 사건에 계속 얽힌다. 여러 영국 패널쇼를 공동 기획했던 오스먼답게 대사 타이밍은 시트콤 작가 수준이지만, 감정의 깊이는 코지 미스터리치고 이례적이다. 엘리자베스의 알 수 없는 과거, 이브라힘의 상실, 조이스의 일기 형식 서술이 4권 내내 조금씩 무게를 더해가고, 특히 마지막 권 《마지막까지 죽지 않은 악당》은 코지 미스터리라는 장르가 감당하기엔 벅찰 정도로 마음을 친다.
사건 자체도 제법 정교하다. 오스먼은 단서를 정직하게 배치하는 편이다. 다만 진짜 매력은 이 네 사람의 우정에 있다. 3권쯤 가면 사건보다 이들의 목요일 모임이 더 기다려진다.
정주행 플랜: 비 오는 주말이나 긴 연휴. 4권 모두 술술 읽히면서도 자꾸 페이지를 천천히 넘기게 만든다.
《넘버원 여탐정 아젠시》 — 알렉산더 매콜 스미스
20권 이상 이어지는 장기 시리즈 | 주말 한 번에는 첫 3권
프레셔스 라모츠웨는 보츠와나 최초의 여성 전용 탐정 사무소를 열고, 지나치게 원칙적인 비서 마쿠치와 함께 일한다. 사건은 대체로 소박하다. 실종된 남편, 수상한 동업자, 가끔 진짜 범죄까지. 하지만 이 시리즈의 진짜 주제는 프레셔스 자신이다. 그의 도덕적 명료함, 인내심, 자신이 뿌리내린 이 나라에 대한 깊은 애정. 매콜 스미스의 문장은 동시대 소설 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순수하게 위로가 되는데, 여러 권을 연달아 읽어야 그 위로가 제대로 전해진다. 이 시리즈에는 애초에 독자를 놀라게 할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정주행 플랜: 기력이 바닥났을 때, 심장 박동을 올리지 않을 이야기가 필요할 때 딱이다. 주말 동안 3권 정도면 부담 없이 회복하는 기분으로 읽힌다.
하드보일드 & 수사물: 긴 호흡의 게임
해리 보슈 시리즈 — 마이클 코넬리
《블랙 에코》부터 20권 이상 | 주말 한 번에는 첫 4권
LA 경찰 강력반 형사 해리 보슈는 원칙 하나로 움직인다. “모두가 중요하지 않으면 아무도 중요하지 않다.” 코넬리의 시리즈는 미국 수사물의 표준이라 할 만큼 취재가 꼼꼼하고 플롯이 탄탄하며, 피해자에게 집착에 가까운 헌신을 보이는 주인공 덕에 일에서는 탁월하지만 그 외 거의 모든 관계에서는 서툰 사람이 중심을 잡는다. 초반 세 권 《블랙 에코》, 《블랙 아이스》, 《어둠보다 깊은》을 묶어 읽으면 보슈의 베트남전 과거와 LA 경찰 조직과의 껄끄러운 관계, 모든 판단의 기준이 되는 원칙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시리즈 후반부에서는 보슈의 이야기가 변호사 미키 할러(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의 시리즈와 겹치기 시작하는데, 두 시리즈를 함께 따라온 독자에게는 이 지점이 또 하나의 보상이 된다. 그만큼 깊게 정주행할 이유가 하나 더 늘어난다.
정주행 플랜: 4권, 집중해서 읽는 한 주. 플롯의 완급은 느리게 조절되지만 긴장감은 한 번도 풀리지 않는다.
리버스 시리즈 — 이언 랜킨
《매듭과 십자가》부터 20권 이상 | 주말 한 번에는 첫 3권
수사관 존 리버스는 위스키를 손에서 놓지 못하고 결혼 생활은 이미 무너졌지만, 묻어둔 채로도 진지한 도덕성을 지니고 있다. 에든버러의 뒷골목을 파고드는 그의 이야기에서 도시 자체도 하나의 캐릭터에 가깝다. 구시가지와 조지 왕조풍 신시가지가 나란히 존재하는 에든버러의 지형은 시리즈 내내 계급을 가르는 눈에 보이는 경계선으로 쓰이고, 랜킨은 이 지리를 플롯 구성에 그대로 활용한다. 리버스가 정주행할 가치가 있는 이유는 손상이 서서히 쌓여가는 방식에 있다. 한 권마다 그는 뭔가를 잃고, 몇 권을 거듭 읽다 보면 그가 왜 그렇게 술을 마시는지 저절로 이해가 된다.
정주행 플랜: 3권, 늦은 저녁마다 읽는 한 주. 따뜻한 걸 곁에 두고 읽는 게 좋다. 햇살 좋은 날 읽을 이야기는 아니다.
북유럽 누아르: 차갑고 어둡고 손을 놓을 수 없는
큐 부서 — 유시 아들레르올센
《특수2과 Q》부터 9권 | 주말 한 번에는 첫 3권
형사 칼 뫼르크는 사건을 완전히 망친 뒤 지하 사무실로 좌천되고, 체면치레용으로 덴마크의 미제 사건을 다시 여는 일을 맡는다. 그런데 신비로운 조수 아사드와 함께 그 사건들을 실제로 풀기 시작한다. 아들레르올센의 플롯은 조금도 느슨해지지 않는다. 매 권마다 미제 사건 수사와 원래 피해자 시점의 회상 장이 엇갈려 배치되고, 갑작스러운 반전보다 구조적인 대구를 통해 서서히 공포가 쌓인다. 뫼르크와 아사드의 까칠하고 마지못한 파트너십(아사드 본인의 과거도 시리즈 전체에 걸쳐 천천히 풀린다)이 사건 사이사이 페이지를 넘기게 만드는 진짜 동력이다.
정주행 플랜: 3권, 몰입도 높은 한 주. 자기 직전에 읽을 시리즈는 아니다. 회상 장면들이 오래 남는다.
큐 부서와 나란히 둘 만한: 쿠르트 발란더 — 헨닝 만켈
《얼굴 없는 살인자들》부터 11권 | 주말 한 번에는 첫 3권
큐 부서가 추진력이 강한 북유럽 누아르라면, 만켈의 발란더 시리즈는 무게감이 강한 쪽이다. 형사 쿠르트 발란더는 스웨덴 시골 마을 위스타드의 사건을 조용히 무너져 가면서 수사한다. 당뇨병, 멀어진 딸, 스웨덴의 사회적 합의가 자기 눈앞에서 서서히 갈라지고 있다는 감각까지 짊어진 채로. 만켈은 범죄 소설을 통해 스웨덴 사회 자체를 정면으로 캐묻고, 이 시리즈 특유의 비관은 그대로 힘이 된다. 사실 큐 부서, 밀레니엄 3부작을 비롯한 수많은 스칸디나비아산 미스터리가 뒤따른 북유럽 누아르 공식을 처음 세운 게 바로 이 시리즈다.
정주행 플랜: 최소 3권. 플롯만큼이나 분위기를 즐기며 읽어야 한다. 발란더는 서두르지 않는 독자에게 더 많이 돌려준다.
문학적 범죄 소설: 사건보다 인물
더블린 살인수사팀 — 태나 프렌치
《숲속의 비밀》부터 6권 | 주말 한 번에는 아무 2~3권
태나 프렌치의 구성 방식은 독특하면서도 정주행에 은근히 유리하다. 매 권마다 더블린 살인수사팀의 다른 멤버가 주인공이 되고, 앞 권의 주인공은 조연으로 다시 등장한다. 덕분에 세계관은 이어지지만 엄격한 순서 없이도 읽을 수 있다. 밀도 높고 심리 묘사가 날카로운 프렌치의 문장은 빨리 읽기보다 천천히 곱씹을 때 더 큰 보상을 준다. 가장 유명한 첫 권 《숲속의 비밀》은 동시대 범죄 소설 중 가장 논쟁적인 결말로도 유명하지만, 많은 독자에게는 《닮은 사람》이나 《충실한 곳》이 오히려 더 강렬하게 남는다.
정주행 플랜: 2~3권, 첫 권 이후로는 순서를 딱히 정할 필요가 없다. 어느 형사의 서사가 가장 끌리는지에 따라 골라 읽으면 된다.
가마슈 경감 시리즈 — 루이스 페니
《스틸 라이프》부터 19권 | 주말 한 번에는 첫 3권
가상의 퀘벡 마을 스리 파인즈를 주 무대로, 퀘벡 경찰청 소속 가마슈 경감이 사건을 수사한다. 그는 진지한 도덕성과 진짜 다정함을 지녔으면서도, 자신이 속한 조직 안의 부패와는 오랫동안 서서히 맞서고 있다. 사건 자체도 만족스럽지만, 독자들이 계속 돌아오는 진짜 이유는 화가와 시인, 괴짜들이 반복해서 등장하는 스리 파인즈라는 마을 그 자체다. 페니는 시리즈 초반 여러 권에 걸쳐 퀘벡 경찰청 내부 부패에 관한 큰 흐름을 쌓아가는데, 6권쯤에서 그 흐름이 극적으로 터진다.
정주행 플랜: 우선 3권으로 시작하되, 많은 독자들이 한 달에 걸쳐 전권을 정주행했다고 말한다. 진짜 감정의 무게가 있는 마을 미스터리.
역사·모험 미스터리
아멜리아 피바디 — 엘리자베스 피터스
《악어가 있는 모래톱》부터 20권 | 주말 한 번에는 첫 3권
빅토리아 시대 이집트학자이자 아마추어 탐정 아멜리아 피바디가 세기말 이집트의 실제 발굴 현장을 배경으로 사건을 해결한다. 남편 래드클리프 에머슨, 그리고 나중에는 무섭도록 똑똑한 아들 램세스까지 함께다. 피터스(실제 이집트학자 바버라 메르츠의 필명)는 정확한 시대 고증에 자신의 능력을 한 치도 의심하지 않는 짓궂고 유쾌한 1인칭 화자를 겹쳐놓는다. 이 시리즈는 순수한 모험형 미스터리의 편안함 그 자체다. 양산과 미라, 그리고 부부 사이의 티격태격이 거의 비슷한 비중으로 얽혀 있다.
정주행 플랜: 3권, 가능하면 따뜻한 곳에서. 이보다 더 좋은 도피성 독서도 드물다.
미스터리 정주행, 이렇게 준비하면 좋다
그날의 체력에 맞는 장르를 고른다. 기운이 없는 한 주엔 《목요일 살인클럽》이나 《넘버원 여탐정 아젠시》처럼 많은 걸 요구하지 않으면서도 확실히 즐거운 시리즈가 어울린다. 뭔가 강렬하게 느끼고 싶은 주엔 큐 부서나 발란더 쪽이 맞다. 문장의 밀도를 원한다면 프렌치와 페니가 다른 시리즈보다 더 천천히, 더 가까이 읽어야 제 몫을 돌려준다.
용의자와 시간대를 메모해가며 읽는다. 판타지나 로맨스 정주행과 달리 미스터리 정주행은 능동적인 기록이 실제로 도움이 된다. 누가 동기를 가졌는지, 누가 자신의 행적을 거짓으로 둘러댔는지, 2장에서 스쳐 지나간 디테일이 20장에서 왜 중요해지는지. 특히 큐 부서나 보슈처럼 플롯이 촘촘한 시리즈에서는 한 세션이 끝날 때마다 짧게 메모해두면 흐름을 놓치지 않는다.
읽는 순서를 미리 정해둔다. 큐 부서, 보슈, 발란더처럼 순서를 요구하는 시리즈가 있는가 하면, 더블린 살인수사팀이나 가마슈처럼 그럴 필요가 없는 시리즈도 있다. 지금 읽는 시리즈가 어느 쪽인지 알아두면 굳이 1권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부담을 덜 수 있다.
감상은 그 순간에 바로 남긴다. 미스터리 정주행의 재미는 결국 사소한 디테일을 얼마나 기억하느냐에 달려 있다. 깜빡 속아 넘어간 미끼, 세 권 뒤에야 의미가 드러나는 형사의 무심한 한마디. 반전이 터진 직후 곧바로 남긴 반응은 몇 주 뒤에 쓴 리뷰가 절대 담아내지 못하는 걸 붙잡아준다. 북닷(Bookdot)을 쓰면 다 읽는 즉시 책을 기록하고, 그 순간의 의심과 반응을 바로 남기면서, 정주행이 이어지는 동안 독서 스트릭이 쌓이는 것도 함께 지켜볼 수 있다.
다음 사건 파일을 펼칠 준비가 됐다면, 반전이 밝혀지기 전 내 추리를 기록하고 시리즈 중간에 길을 잃지 않도록 도와줄 도구가 필요하다. 북닷은 미스터리 정주행을 진지하게 즐기는 독자를 위한 책 기록 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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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 주말에 정주행하기 좋은 미스터리 시리즈는?
- 리처드 오스먼의 《목요일 살인클럽》 시리즈가 가장 무난한 입문작이다. 4권 모두 빠르고 유쾌하며 마음까지 따뜻해서, 캐릭터가 많아도 헷갈릴 일이 없다. 좀 더 날카로운 걸 원한다면 태나 프렌치의 더블린 살인수사팀 시리즈는 순서 없이 아무 권이나 골라 읽어도 된다.
- 미스터리·스릴러 시리즈는 꼭 순서대로 읽어야 하나요?
- 시리즈마다 다르다. 큐 부서, 보슈, 카린 슬로터의 윌 트렌트처럼 형사 개인의 서사가 권마다 이어지는 시리즈는 발간 순서대로 읽는 편이 낫다. 인물 관계와 과거사가 누적되기 때문이다. 반면 루이스 페니의 가마슈 시리즈나 태나 프렌치의 더블린 살인수사팀처럼 각 권이 독립적으로도 완결되는 구조라면 순서를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 정주행에 특히 잘 맞는 스릴러 시리즈의 조건은 무엇인가요?
- 매 권 독립적으로 마무리되는 사건 위에 형사의 사생활, 라이벌 관계, 권마다 아물지 않는 상처 같은 연속적인 감정선이 겹쳐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한 권씩 만족스럽게 마무리되면서도 곧바로 다음 권으로 손이 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