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책을 읽다가 갑자기 울었다면, 당신은 이미 그 감각을 안다.
단지 슬퍼서 우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나만의 언어로 나의 이야기를 써놓은 것처럼, 페이지를 넘기다가 목이 메는 경험. 수십 년 전에 쓰인 책인데 마치 오늘 나를 위해 쓴 것 같은, 그 이상한 안도감.
사람들 사이에 있어도 혼자인 것 같을 때가 있다. 내 감정이 너무 크거나, 너무 이상하거나, 설명하기가 너무 어렵거나. 그럴 때 책이 건네주는 것은 해답이 아니다. “나도 그랬어”라는 말이다.
여기 소개하는 책들은 나를, 혹은 내가 아는 누군가를 덜 외롭게 해준 책들이다.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사회적 규칙이 마치 모두가 미리 배워온 게임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나만 빼고.
《아몬드》 (손원평)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열여섯 살 소년 윤재의 이야기다. 아몬드처럼 생긴 뇌 부위에 이상이 있어, 공포도 슬픔도 기쁨도 잘 모른다. 읽다 보면 이상하게도 윤재가 특별히 더 외로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감정을 느끼는 우리도 그것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 늘 혼자이니까. 이 소설이 특별한 건 ‘다름’을 비극으로만 그리지 않아서다. 윤재는 느끼지 못하는 것들이 많지만, 그래도 연결된다.
《엘리노어 올리펀트는 완전히 괜찮아》 (게일 허니먼, 이나경 옮김)는 얼핏 개성 강한 캐릭터 소설처럼 시작된다. 엘리노어는 이상하고 날카롭고 깊이 고립되어 있다. 그런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이 소설은 트라우마와 고독에 관한 가장 섬세한 소설 중 하나로 드러난다. 그녀는 사람을 이해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보드카와 냉동 피자로 버티면서 괜찮다고 말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괜찮아 보이는 사람’이 얼마나 오래 진정한 연결 없이 살아갈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편의점 인간》 (무라타 사야카, 김석희 옮김)은 18년째 편의점에서 일하는 여성 게이코의 이야기다. 그녀는 행복하다고 말한다. 진심으로. 세상은 그 행복을 인정하지 않는다. 짧지만 날카롭게 파고드는 소설이다. ‘정상’이라는 기준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그리고 그 기준 바깥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생각하게 된다.
《불편한 편의점》 (김호연)은 기억을 잃은 노숙인이 편의점 야간 알바를 하며 주변 사람들과 천천히 엮이는 이야기다. 편의점이라는 공간은 한국에서 특별하다. 누구나 들어오고, 누구도 이유를 묻지 않는 곳. 이 소설은 각자의 방식으로 고립된 사람들이 의도치 않게 연결되는 과정을 담는다. 읽고 나면 늦은 밤 편의점을 다르게 보게 된다.
이름 붙이기 어려운 것들
우울이나 불안은 말로 잘 설명되지 않는다. 그럴 때 책은 그 감각의 형태를 대신 그려준다.
《과장과 절반》 (앨리 브로시, Hyperbole and a Half)은 웹코믹으로 시작한 삽화 에세이 모음집이다. 우울에 관한 챕터들은 그 경험을 이토록 정확하게, 이토록 이상하게 웃기게 쓴 글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다. 이유도 모르고 울었던 적이 있다면, 공허함을 느끼면서 죄책감까지 든 적이 있다면, 이 책은 그 감각을 정확히 알고 있다. 읽고 나면 덜 이상한 사람이 된 기분이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맷 헤이그, 노진선 옮김)의 노라는 삶을 포기하려는 순간 이 세상과 다음 세상 사이 도서관에 떨어진다. 선택하지 않은 삶들을 하나씩 살아본다. 섬세하지 않은 구석도 있지만 진심으로 움직이는 소설이다. 내 삶이 실수였다고, 나는 다른 사람이어야 했다고 생각해본 적 있다면 이 책이 찾아올 것이다.
《불안한 사람들》 (프레드리크 배크만, 이은선 옮김)은 표면적으로는 은행 강도 미수 사건에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다. 하지만 실제로는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서도 여전히 뭔가 부족한 것 같은 사람들에 관한 소설이다. 배크만이 그리는 외로움은 거창하지 않다. 대단한 비극도 아니고 뚜렷한 이유도 없는, 그냥 살다 보면 생기는 외로움. 그래서 더 읽힌다.
진짜로 이해받는다는 것
외로움은 혼자 있는 상태가 아니다. 함께 있어도 통하지 않는 느낌이다. 반면 진짜 이해받는 순간은 사람을 크게 바꾼다.
《노멀 피플》 (샐리 루니, 홍한별 옮김)의 코넬과 메리앤은 서로를 정확히 이해하면서도 그 말을 꺼내지 못한다. 소설 전체가 그 아슬아슬한 균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해받는 것의 두려움, 상대방에게 나의 전부를 보여줬다가 거절당하는 상상. 사랑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친밀함을 감당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내일, 그리고 내일, 그리고 내일》 (가브리엘 젤빈, 김남주 옮김)은 게임을 함께 만드는 오랜 친구이자 파트너인 샘과 새디의 이야기다. 수십 년의 우정과 배신과 회복을 담은 소설인데 그 밑에는 이런 질문이 깔려 있다. 나를 정말로 아는 사람과 함께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이 왜 로맨틱한 사랑보다 더 무섭고 더 필요한가. 같은 언어를 가진 누군가를 드디어 찾았을 때의 그 기분을 이 소설은 정확히 그린다.
《야생의 위로》 (베키 체임버스, 이나경 옮김)는 원하는 것을 다 가졌는데도 공허한 차(茶) 수도승 덱스의 이야기다. 짧고 조용하고 독특한 소설이다. ‘이게 다인데 왜 괜찮지 않지?‘라는 질문을 이보다 부드럽게 다룬 소설을 나는 잘 모른다. 로봇 모스캡의 대답은, 덱스가 답을 알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질문을 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무언가를 고쳐주지는 않지만, 들어주는 소설이다.
조금 다른 방식으로 사는 사람들
사회 규칙이 이해가 안 되고, 사람들이 당연하게 아는 걸 나만 모르는 것 같을 때.
《놀라울 정도로 밝은 피조물》 (셸비 밴 펠트, 박선령 옮김)은 남편을 잃은 여성과, 수족관의 거대 태평양 문어가 번갈아 서술자가 되는 소설이다. 이 소설의 외로움은 세지 않다. 익숙하던 삶이 끝난 뒤 나는 이제 누구인가, 하는 조용한 물음이다. 뜻밖에 찾아오는 연결과 위로가 진짜처럼 느껴진다.
《메이드》 (니타 프로스, The Maid)는 세상 사람들이 당연히 아는 사회적 코드를 잘 모르는 호텔 청소부 몰리의 이야기다. 따뜻하고 재미있으며, 몰리의 방식 —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고, 정확하려 하고, 사람들이 어렵고 그래도 최선을 다하는 — 이 낯익게 느껴지는 독자가 많다.
《로지 프로젝트》 (그레임 심시온, 정수현 옮김)는 아마도 자폐 스펙트럼이 있을 유전학 교수 돈 틸먼이 설문지를 이용해 배우자를 찾으려는 이야기다. 웃기고 친절하며 사람을 어려워하면서도 최선을 다하는 경험에 진정한 온기를 담고 있다. 밑에 깔린 외로움은 진짜고, 그 안에서 자라나는 연결도 진짜로 얻어낸 것이다.
상실 이후의 고독
애도에는 사회적 유효기간이 있다. 하지만 슬픔은 그 기간을 지키지 않는다.
《H마트에서 울다》 (미셸 조너, 김아영 옮김)는 어머니를 잃은 딸의 이야기다. 저자는 한국계 미국인으로, 어머니가 음식으로 표현하던 사랑을 뒤늦게 배우려 애쓴다. 말로는 다 전달되지 않는 것들, 문화와 문화 사이에 걸쳐 있는 정체성, 가장 가까운 사람을 잃은 뒤 찾아오는 이상한 고독. 그 감각을 정확하게 쓴다.
《모스크바의 신사》 (아모르 토울스, 서창렬 옮김)는 1922년부터 수십 년간 호텔에 연금된 백작이 그 좁은 세계 안에서 어떻게 삶을 만들어가는지를 그린다. 변화를 선택할 수 없을 때, 주어진 공간 안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 소설은 그 질문에 유쾌하고도 깊이 있는 답을 건넨다. 갇혀 있다는 느낌이 들 때, 삶이 예상보다 훨씬 좁아졌을 때 읽으면 이상하게 힘이 난다.
언젠가 만날 나의 사람들
아직 내 사람들을 찾지 못했더라도, 이 책들이 먼저 그들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세룰리안 바다의 집》 (T.J. 클루네, 이한결 옮김)은 이상한 마법 아이들과, 그 아이들에게 천천히 가족이 되어가는 어른의 이야기다. ‘파운드 패밀리’라는 개념이 이 소설만큼 따뜻하게 구현된 경우를 보기 어렵다. 태어난 곳이 아닌 선택한 곳에서, 처음부터 알던 사람들이 아닌 선택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 읽고 나면 다시 처음부터 읽고 싶어진다.
《여섯 개의 까마귀》 (레이 바두고, 한지원 옮김)는 각자의 방식으로 부서진 사람들이 서로를 발견하는 이야기다. 소속감 이전의 외로움이 그들의 뼈에 새겨져 있다. 서로를 대하는 방식, 말을 돌려서 하는 방식,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방식에서 그것이 보인다. 소속감이 찾아올 때 그것이 소중한 이유는 쉽게 얻어지지 않아서다.
《파친코》 (민진 리, 이미정 옮김)는 일본에 사는 한국인 가족 4대의 이야기다. 어디서도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람들, 영원히 경계에 서 있는 사람들. 그 경계 안에서 지속되는 사랑과 존엄이 이 소설의 중심이다. 읽고 나면 거대한 무언가의 일부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소속하고 싶은 마음은 가장 오래된 인간 경험 중 하나이고, 당신의 것도 그 안에 있다.
혼자라는 느낌은 혼자라는 사실과 다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당신과 똑같은 감정을 느끼며 그 책을 쓰거나 읽고 있다. 시간을 건너 도착하는 “나도 그래” — 독서가 건네는 가장 드문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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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 어울리지 못하는 느낌을 받는 사람에게 좋은 책은 무엇인가요?
- 손원평의 《아몬드》, 게일 허니먼의 《엘리노어 올리펀트는 완전히 괜찮아》, 무라타 사야카의 《편의점 인간》은 '다름'의 다양한 형태를 그려냅니다. 어느 것도 그 다름을 비극으로만 다루지 않아 읽고 나면 자신의 감각이 잘못된 게 아니라는 확인을 받는 느낌이 듭니다.
- 우울하거나 고립감을 느낄 때 도움이 되는 책이 있나요?
- 앨리 브로시의 《과장과 절반》(Hyperbole and a Half), 맷 헤이그의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프레드리크 배크만의 《불안한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이름 없는 슬픔과 고독을 정확하게 그립니다. 해답을 주는 책이 아니라 '나도 그 느낌을 안다'고 말해주는 책들입니다.
- 파운드 패밀리(found family)와 소속감을 주제로 한 책을 추천해 주세요.
- T.J. 클루네의 《세룰리안 바다의 집》, 레이 바두고의 《여섯 개의 까마귀》, 민진 리의 《파친코》가 각각 다른 결의 소속감을 그립니다. 세 권 모두 소속이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