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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다시 주인공으로 만들어준 책들: '주인공 서사' 13권

Bookdot Team
#주인공 에너지 책#주인공 서사#자기 발견 소설#키르케#엘리노어 올리펀트는 완전히 괜찮아#레전드 앤 라떼#레슨 인 케미스트리#왕좌의 계승자#가시나무 숲#자존감 소설#booktok emotion#재발견 이야기
따뜻한 오후 햇살 속에서 자신감 있게 책을 읽는 여성, 자기 확신과 조용한 변화를 상징하는 장면

어떤 책에는 인물이 더 이상 미안해하지 않기로 결심하는 순간이 있다.

요란하지 않다. 연설 같은 것도 거의 없다. 대개는 아주 작은 장면이다. 전 페이지였다면 그냥 그러겠다고 했을 일에 이번에는 아니라고 말한다. 누가 알아봐 주길 바라며 원하는 걸 숨기는 대신 그냥 요구한다. 자기 삶을 남의 이야기 속 조연처럼 서술하던 걸 그만둔다.

요즘 SNS에서는 이런 순간을 ‘주인공 에너지’라고 부른다. 한 번 이 감각을 알아채고 나면 소설 속 곳곳에서 그것을 찾아다니게 된다. 모든 주인공이 구조적으로는 자기 이야기의 중심인물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어떤 인물들은 그 이상이다. 하찮게 취급받고 조롱당하고 조용히 지워졌던 여자들이 어느 지점에서 더는 그렇게 살지 않기로 마음먹는 이야기들. 그 서사 자체가 하나의 장르처럼 느껴질 정도다.

여기 소개하는 책들이 나에게 그랬다. 편안하게 읽히는 위로용 소설은 아니다. 물론 그런 면도 있지만 그보다는 도전에 가깝다. 한 여자가 자기 삶이 부록이 아니라 본편이라고 결정하는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주는 책들이다.

남이 씌운 신화를 되찾아오는 이야기

가장 통쾌한 재발견의 서사는 애초에 자기 이야기도 아니었던 신화 속에서 각주 취급을 받던 여자들에게서 나온다.

《키르케》 (매들린 밀러, 이은선 옮김)는 이 장르 전체의 원형이라 해도 좋을 소설이다. 밀러가 의도했든 아니든 그렇다. 호메로스와 오비디우스의 세계에서 키르케는 남자들을 돼지로 바꾸고 그 대가로 이야기 속에서 벌을 받는 하찮은 마녀에 불과했다. 밀러는 이 마녀에게 펜을 쥐여준다. 그렇게 완성된 것은, 가족에게조차 평범하다고 무시당하고 섬으로 추방된 여자가 그 누구의 허락도 없이 혼자서 자신이 결코 평범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아가는 이야기다. 마법은 신이 내려준 재능이 아니라 실패와 반복 끝에 스스로 익힌 기술이다. 소설의 끝에서는 자신의 불멸조차 그 누구의 결정도 아닌 자신의 결정으로 만든다. 구조로 보나 감정으로 보나, 이 소설이야말로 주인공 서사의 정석이다.

《아리아드네》 (제니퍼 세인트, 이진 옮김)도 비슷한 일을 한다.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로스를 죽이도록 도와준 뒤 해변에 버려진 여자, 삼천 년 동안 그의 영웅담 속 각주로만 존재했던 인물이다. 세인트는 아리아드네와 그녀의 동생 파이드라에게, 신화가 한 번도 신경 쓰지 않았던 내면을 돌려준다. 《키르케》보다는 조용한 소설이지만 원리는 같다. 도구로 쓰이던 여자가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자신의 판본을 되찾는 이야기.

《에블린 휴고의 일곱 남편》 (테일러 젠킨스 리드, 정연희 옮김)은 신화는 아니지만 같은 수법을 쓴다. 에블린은 수십 년 동안 언론과 스튜디오와 대중이 자신의 이야기를 대신 써 내려가도록 내버려두었다. 스캔들, 결혼들, 소문들. 그 뒤에서 그녀는 자기 방식대로 살아남고 이기기 위해 해야 할 일을 조용히 해왔을 뿐이다. 늙은 여배우가 마침내 한 기자에게 평생 숨겨온 진실을 털어놓는다는 소설의 구조 자체가 하나의 서사 탈환이다. 그녀는 타블로이드가 묘사한 여자였던 적이 없다. 언제나 저자였다. 다만 아직 출간하지 않았을 뿐이다.

허락받지 않고 다시 시작하기

어떤 책들은 과거의 이야기를 되찾는 게 아니라, 지금 살고 있는 삶이 더는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그 자리에서 바로 다른 삶을 짓는 여자들의 이야기다.

《엘리노어 올리펀트는 완전히 괜찮아》 (게일 허니먼, 이나경 옮김)의 시작은 존재 전체를 투명인간처럼 설계한 여자다. 매일 같은 점심, 같은 출근길, 집에 돌아가면 기다리고 있는 보드카 한 병. 친구도 없고 계획도 없다. 아무것도 걸지 않았으니 아무것도 무너질 수 없다. 이 소설의 진짜 성취는, 엘리노어가 여러 번 실패하고 넘어지면서도 결국 자신이 생존 이상의 것을 원해도 된다고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데 있다. 그녀는 다른 사람이 되지 않는다. 원래 자신이었던 사람을 더는 숨기지 않는 사람이 될 뿐이다.

《레슨 인 케미스트리》 (보니 가머스, 정지현 옮김)의 엘리자베스 조트는 1960년대 미국의 뛰어난 화학자다. 여자를 동등한 존재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과학계에서 매번 무시당하고 괴롭힘당한 끝에, 그녀가 서게 된 무대는 기묘하게도 텔레비전 요리 프로그램이다. 세상이 유일하게 허락한 그 무대에서 그녀는 화학 지식을 그대로 전달하며 방송을 뒤흔든다. 그녀는 방에 맞춰 자신을 줄이지 않는다. 매 회차마다 정확하고 집요하게, 방을 자신에게 맞춘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황보름)는 숨 막히는 직장을 그만두고 5년 계획도,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이 작은 동네 서점을 여는 여자의 이야기다. 엘리자베스 조트만큼 싸워 이겨야 할 거대한 적은 없다. 대신 더 작고 조용한, 온전히 자신이 지은 삶이 원래 자기 것이 아니었던 더 큰 삶보다 낫다는 조용한 결심이 있을 뿐이다. 바로 그 점 때문에 이 소설은 한국에서 나온 재발견 이야기 중 가장 사랑받는 작품 중 하나가 되었다.

《에비 드레이크, 다시 시작하다》 (린다 홈스)의 젊은 미망인은 세상이 기대하는 방식대로 슬픔을 연기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그녀의 진짜 변화는 낯선 이에게, 그리고 결국 자신에게 더는 그 슬픔을 연기하지 않기로 하고 지금 정말로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솔직해지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아무도 허락하지 않아도 처음부터 쌓아 올린 자신감

주인공 서사가 모두 상처에서 출발하는 건 아니다. 어떤 이야기는 딱히 외부의 허락 없이도, 그냥 다른 사람이 되기로 결정하는 인물들에게서 나온다.

《레전드 앤 라떼》 (트래비스 볼드리, 노도현 옮김)의 오크 전사 비브는 평생 남의 무기로 살아온 끝에, 어느 날 갑자기 모험가 생활을 은퇴하고 한 번도 이런 가게를 본 적 없는 도시에 커피숍을 연다. 그녀의 손을 이끄는 비극적인 사연 같은 건 없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들여다보고 다른 삶을 원한다고 결정한 뒤, 한 잔 한 잔 손수 만들어가는 여자가 있을 뿐이다. 코지 판타지 장르가 재발견을 필연이 아닌 순수한 의지의 결과로 가장 깔끔하게 증류해낸 소설이다.

《놀라울 정도로 밝은 피조물》 (셸비 밴 펠트, 박선령 옮김)의 인간 주인공 토바에게는 수십 년간 슬픔과 반복되는 일상으로 정의됐던 삶 끝에 찾아오는 조용한 뒤늦은 각성이 있다. 뜻밖에도 인간보다 사람 속을 더 잘 꿰뚫어 보는 문어 한 마리의 도움을 받으면서. 주인공 에너지에 젊음이 필수 조건은 아니라는 증거다. 때로는 그저 준비됐다는 걸 누군가 알아봐 주기만 하면 된다.

《불안한 사람들》 (프레드리크 배크만, 이은선 옮김)은 엄밀히 말하면 실패한 은행 강도를 둘러싼 인물 군상극이지만 등장인물 거의 전원이 조용히 재발견의 한복판을 지나고 있다. 모두가 남들이 기대하는 자기 모습을 연기하는 걸 그만두려는 참이다. 배크만의 재능은 이런 에너지가 겉으로는 전혀 극적으로 보이지 않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데 있다. 때로는 그것이 인질극 협상 안에서 마침내 모두가 진심을 말하는 순간처럼 보이기도 한다.

서브플롯이 되기를 거부하는 로맨스 여주인공들

로맨스 장르에도 이 서사의 고유한 버전이 있다. 대개는 여주인공이 자신보다 작은 사람을 위해 쓰인 역할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할 때 시작된다.

《북 러버스》 (에밀리 헨리, 신솔잎 옮김)는 구조적으로 자신이 기대고 있는 클리셰 자체를 배반하는 소설이다. 노라 스티븐스는 평생 야망 있는 도시 여자가 시골 마을의 순한 여자에게 남자를 뺏기는 로맨스 소설만 읽어왔다. 그리고 이제 그 ‘패배자’ 역할을 맡는 데 지쳤다. 소설 전체의 농담이자 핵심은, 노라가 야심 있고 까다롭고 호감을 사려고 자신을 줄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자기 이야기에서 밀려나기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여주인공이 된다.

《디 아이디어 오브 유》 (로빈 리)의 솔렌은 마흔 살 갤러리 대표로, 훨씬 어린 팝스타와 사랑에 빠진 뒤 소설 내내 그것을 부끄러워해야 한다는 세상의 압박을 견딘다. 그녀는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자신을 줄이거나 사과하거나 남이 자신에게 씌우려는 서사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그 태도가 이 소설 전체를 움직이는 동력이며 무언가를 원하는 것이 체면 없는 일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는 독자들에게 이 소설이 유독 크게 와닿은 이유이기도 하다.

《플랫셰어》 (베스 오리어리, 강나은 옮김)의 티피는 좀 더 조용한 궤적을 그린다. 수년간 자신을 작게 만들어온 통제적인 관계를 떠난 뒤, 한 번도 직접 만난 적 없는 낯선 이와 아파트를 나눠 쓴다는 기묘한 장치를 통해 서서히 자기 삶에서 다시 자리를 차지하는 기분을 되찾아간다.

선택받기를 기다리지 않기로 한 판타지 여주인공들

판타지 장르에도 초반부 내내 과소평가받다가, 어느 순간 그것을 더는 참지 않기로 하는 여자들의 오랜 전통이 있다.

《업루티드》 (나오미 노비크, 이수현 옮김)의 아그니에슈카는 10년마다 마을 소녀 한 명을 데려가는 사악한 마법사에게 가장 친한 친구를 빼앗길 거라 예상하며 소설을 시작한다. 조용히, 자신은 남겨질 평범한 쪽이라고 여기면서. 하지만 데려가진 건 그녀 자신이다. 이 소설의 진짜 즐거움은 어두운 탑이나 오염된 숲이 아니라, 서투르고 특별할 것 없다고 믿으며 자란 소녀가 자신의 마법이 그저 남들과 다르게 작동할 뿐이며 다르다는 것이 열등하다는 뜻은 결코 아니었다는 사실을 발견해가는 과정에 있다.

《가시 왕관과 서리의 불꽃》 (사라 J. 마스 시리즈의 네스타 편)은 앞선 시리즈 내내 까칠하고 다루기 힘들고 사랑하기 어려운 인물로, 심지어 서사 자체로부터도 그렇게 취급받던 네스타에게 이 궤적을 부여한다. 그녀의 책은 사실상 수백 페이지에 걸쳐, 누구의 일정에도 맞춰 구원받기를 거부하고 자기만의 속도로 치유하며 시작할 때와 똑같이 날카롭지만 더는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여자의 이야기다. 결말에서 여주인공을 더 호감형으로 순화시키는 걸 명시적으로 거부하는 몇 안 되는 재발견 서사 중 하나다.

《왕좌의 계승자》 (사라 J. 마스, 박수현 옮김)는 소금 광산에 노예로 끌려간 켈레이나 사르도씨엔으로 시작한다. 자신을 파괴한 왕 밑에서 일할 기회를 얻기 위해 경쟁해야 하는, 이름도 명성도 빼앗긴 전직 암살자다. 시리즈 전체는 그녀가 축소된 적이 결코 없으며 단지 잠시 파묻혀 있었을 뿐이라는, 그리고 그 광산에서 과소평가받던 소녀가 처음부터 줄곧 그녀가 말한 바로 그 사람이었다는 긴 논증이다.

이 서사가 BookTok에서 유독 크게 통하는 이유

이 흐름이 이렇게 크게 퍼진 이유는 사실 소설 자체와는 별로 상관이 없다. 그보다는 얼마나 많은 독자가 재발견의 순간을 알아차리기도 전에, 이 인물들 안에서 자신의 조용한 자기 지우기를 먼저 알아봤는가에 있다. 엘리노어 올리펀트의 고립, 엘리자베스 조트가 겪은 직업적 무시, 아리아드네가 자신의 신화 속에서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것. 이런 것들은 과장이 아니다. 다만 평소에는 보이지 않을 뿐이다. 여자들이 스스로를 줄이는 모습은 좀처럼 극적인 장면이 되지 못하니까. 소설은 그것을 느리게 재생하고 이름을 붙여줄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되돌릴 수도 있다. 바로 그 지점이 중독적이다. 인물이 압박 속에서 점점 작아지는 걸 지켜보기만 하는 게 아니라, 그녀가 페이지 위에서 이제 그만하겠다고 결심하는 순간을 목격하게 된다. 이런 책들이 그렇게 자주 인용되고 캡처되고 수천 개의 틱톡 영상에 “이 문장이 머릿속에서 안 떠나요”라는 자막과 함께 편집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 문장은 대개 극적이지 않다. 보통은 그저 한 여자가 마침내 원하는 것을 소리 내어 말하는 장면일 뿐이다.

나만의 주인공 에너지 독서 목록 만들기

이 서사가 나에게 통했던 방식대로 당신에게도 통한다면, 찾아야 할 패턴은 장르가 아니다. 판타지든 문학소설이든 로맨스든 신화 재해석이든 이 패턴은 똑같이 나타난다. 정황이든 트라우마든 조롱이든 순전한 사회적 조건화든, 실제보다 작게 시작한 주인공이 그 작음이 애초에 사실이 아니었음을 소설 내내 증명해가는 것이다.

각 작가가 그곳에 도달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밀러와 세인트는 애초에 여성에게 불공정했던 신화를 다시 파고들어 기록을 바로잡는다. 허니먼과 가머스는 주변 제도로부터 무시당한 여자들이 그 무시를 최종 결론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게 만든다. 볼드리와 밴 펠트는 악당을 아예 등장시키지 않고 재발견을 순전한 의지의 결과로 도착하게 만든다. 그 어느 것도 지침을 늘어놓지 않는다. 더 큰 삶으로 가는 다섯 단계 같은 건 없다. 바로 그래서 어떤 조언보다 더 효과적으로 작동한다. 교훈을 흡수하는 게 아니라 감정을 흡수하게 되고 그 감정은 책을 덮은 뒤에도 오래 남는다.

가장 크게 와닿은 책을 기록해두자. 자신감을 다시 채워야 할 때 돌아가게 되는 책이 무엇인지 눈여겨보고 그 책장을 의도적으로 만들어가자. 한 번 읽고 마는 책도 있다. 이런 책들은 곁에 계속 두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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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주인공 에너지'가 있는 책이란 무슨 뜻인가요?
다른 사람의 이야기 속 조연이나 배경으로 취급받던 인물이 어느 순간부터 자기 삶을 스스로 결정하기 시작하는 서사를 뜻합니다. 대개는 재발견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무시당하거나, 지워지거나, 남이 규정한 역할 안에 갇혀 있던 인물이 이야기의 주도권을 되찾고 자기만의 기준으로 살아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주인공 서사를 느끼기에 가장 좋은 책은 무엇인가요?
매들린 밀러의 《키르케》가 가장 확실한 예입니다. 그리스 신화 속에서 조롱받던 하찮은 마녀가 스스로 자기 신화의 저자가 됩니다. 게일 허니먼의 《엘리노어 올리펀트는 완전히 괜찮아》와 보니 가머스의 《레슨 인 케미스트리》도 그에 못지않습니다. 두 소설 모두 세상이 원하는 만큼 자신을 줄이기를 거부하는 여자들의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에너지 책은 자기계발서와 같은 건가요?
아닙니다. 이 책들은 소설이지 지침서가 아닙니다. 여기서 오는 용기는 누가 어떻게 하라고 알려줘서가 아니라, 완전히 살아 숨 쉬는 한 인물이 변화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데서 옵니다. 그래서 오히려 자기계발서보다 더 오래 남을 때가 많습니다. 교훈을 주입받는 게 아니라 그 감정을 그대로 흡수하게 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