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독서 인생 최고의 책이 아직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서가에 꽂혀 있을 수도 있다.
누군가 책 한 권을 건네며 이렇게 말한다. “네 취향은 아닌데 그냥 한번만 읽어봐.” 당신은 회의적이다. 그 장르는 한 번 시도해봤다가 실패한 기억이 있다. 표지도 별로다. 주변에서 이미 추천을 들었지만 마음이 안 갔다. 그런데 40페이지쯤, 아니면 80페이지쯤, 혹은 150페이지쯤에서 무언가 달라진다. 고개를 들어보면 이미 밤이 깊었고, 이 책 없이 어떻게 살았지 싶은 감정이 찾아온다.
아래에 소개할 책들이 바로 그런 책들이다. 독자들이 가장 많이 “내가 완전히 틀렸다”고 고백하게 만든 책들. 읽고 나서 주변 모든 사람에게 억지로 떠안긴 책들. 장르 편견이 무너지는 순간을 만들어준 책들.
”판타지는 절대 내 취향 아니에요”—여섯 개의 까마귀를 만나기 전까지
판타지가 많은 독자를 잃는 건 지도가 처음 나오는 순간이다. 생경한 고유명사들, 쏟아지는 세계관 설명, 흥미로운 일이 시작되기 전에 먼저 소화해야 하는 방대한 정보량. 레이 바르두고의 『여섯 개의 까마귀』는 그런 독자들을 위한 예외다.
이 책은 케이퍼 소설이다. 살아남을 가능성이 없는 도시에서 불가능한 임무를 받은 여섯 명의 범죄자. 마법 시스템은 배경으로 물러나 있고, 세계관 설명은 홍수가 아니라 방울방울 떨어진다. 이야기를 이끄는 건 캐릭터들이다. 냉혹한 전략가 카즈 브레커, 조용하고 치명적인 이네이, 위험한 매력을 가진 예스퍼. 이 여섯 명이 서로를 선택하고, 그 선택을 절대 인정하지 않으려 하면서, 어쩔 수 없이 함께가 되어가는 과정—그게 이 책의 진짜 심장이다. 판타지라서가 아니라, 인간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에 읽는 책이다.
조금 더 가벼운 판타지 입문서를 원한다면 TJ 클루운의 『바다색 집의 아이들』도 있다. 세상을 끝낼 수도 있는 아이들이 사는 고아원을 감사하러 간 공무원의 이야기인데, 관료제와 온기와 발견된 가족에 관한 가장 포근한 판타지다. “판타지 안 읽어”라는 독자들이 마지막 페이지에서 눈물 흘리고 5성을 주는 책이다.
한국 독자들에게는 이수현 작가의 『달러구트 꿈 백화점』도 훌륭한 판타지 입문서다. 꿈을 파는 백화점이라는 설정 아래 이어지는 단편들은 각각 완결된 이야기를 가지면서도 하나의 커다란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판타지는 어렵다”는 독자들이 가장 먼저 꼽는 국내 추천작이기도 하다.
”로맨스는 너무 가볍지 않나요?”—에밀리 헨리를 읽기 전까지
로맨스 장르를 가볍게 보는 시선은 흔하고 대부분 틀렸다. 순수한 도피 문학으로서의 로맨스도 나쁠 것 없지만, 로맨스가 감정적 복잡성이나 문학적 완성도나 진짜 웃음을 가질 수 없다는 가정은 이미 여러 작가들이 철저하게 무너뜨렸다.
에밀리 헨리의 『비치 리드』는 로맨스 소설을 쓰는 작가와 순문학 소설을 쓰는 작가가 여름 한철 동안 옆집에 나란히 살게 되는 이야기다. 두 사람은 서로의 장르에 대한 편견에 도전하고, 무너지고, 다시 세워진다. 헨리는 픽션이 우리를 어떻게 형성하는지, 슬픔이 우리가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어떻게 왜곡하는지에 대해 날카롭게 쓴다. 그리고 웃기다. 진짜로. 같은 해 출판된 ‘문학소설’이라는 딱지가 붙은 소설들보다 페이지당 감정 밀도가 높다.
『사람들을 만나는 방법』(People We Meet on Vacation)은 두 타임라인을 교차하면서 수년에 걸친 우정이 사랑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로맨스 안 읽어”라는 독자들이 한 번 앉아서 다 읽고, 다음 날 주변 사람에게 권하는 책이다.
알리 해이즐우드의 『러브 하이포세시스』는 STEM 분야 대학원생의 페이크 데이팅 이야기인데, 신경과학자 출신 작가가 학계 문화를 속속들이 아는 채로 쓴 덕분에 배경이 살아있다. 좁고 전문적인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읽으면 당신을 위해 쓴 것 같다.
”고전은 도저히 못 읽겠어요”—설득부터 시작해보세요
‘고전’이라는 단어는 학교 숙제, 마감, 관심도 없는 책을 억지로 읽어야 했던 기억들의 무게를 담고 있다. 그러나 고전답지 않게 읽히는 고전들이 있고, 제인 오스틴의 『설득』은 그 중 최고다.
오스틴의 소설 중 가장 짧고 가장 우울한 이 작품은, 열아홉 살에 사랑을 포기하도록 설득 당한 여자가 8년 후 같은 남자를 다시 만나는 이야기다. 그 유명한 편지—“당신은 내 영혼을 꿰뚫습니다. 나는 반은 고통, 반은 희망 속에 있습니다”—는 영문학 최고의 장면 중 하나이고, 300페이지 안에 담겨 있다. 『오만과 편견』에서 흥미를 못 찾은 독자들이 『설득』을 읽고서야 “오스틴이 왜 좋은지 이제 알겠다”고 하는 경우가 많다.
분위기 있는 고전을 원한다면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의 『바람의 그림자』를 추천한다. 전후 바르셀로나를 배경으로, 한 소년이 비밀 도서관에서 책 한 권을 발견하고 그 저자의 모든 책이 누군가에 의해 체계적으로 파괴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이야기. 고딕 스릴러처럼 읽히고, 미스터리처럼 전개되고, 문학소설처럼 여운을 남긴다. “고전은 어렵다”는 독자들에게 가장 자주 권하는 세계문학이다.
”슬픈 책은 피하고 싶어요”—그래도 이건 읽어보세요
감정적으로 소진되는 픽션을 피하는 것은 합리적이다. 그러나 당신을 올바른 방식으로 무너뜨리는 책들은 대개 다시 세워주기도 한다. 그리고 ‘슬픈 책’이라는 카테고리 안에는 실은 다른 종류의 책들이 있다—삶에 대한, 최고 수준의 문장으로 쓰인 책들.
가브리엘 제빈의 『내일, 그리고 내일, 그리고 내일』은 지금 이 카테고리에서 가장 많이 추천되는 책이다. 표면적으로는 30년에 걸쳐 함께 게임을 만드는 두 친구의 이야기. 실제로는 창의성, 동반자 관계, 실패, 그리고 단 하나의 삶에서 의미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의 대가에 관한 가장 확장되고 정밀한 소설이다. 슬픈 대목이 있다. 하지만 제빈은 경이로움과 따뜻함과 기쁨으로도 가득 쓴다. 독자들은 이 책을 “알고 있었지만 몰랐던 필요한 책”이라고 표현한다.
마르쿠스 추작의 『책 도둑』은 죽음이 화자이고 2차 세계대전이 배경이라는, 지구상에서 가장 우울해 보이는 조합으로 시작한다. 실제로는 단어들에 대한, 이야기가 그것을 전한 사람들보다 오래 살아남는 방식에 대한,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비범하게 사는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소설이다. 분명히 울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읽은 독자들이 울고, 다 읽은 후 처음으로 돌아가는 책이다.
국내 독자들에게는 손원평 작가의 『아몬드』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소년 윤재의 이야기는 처음엔 차갑고 멀게 느껴지지만, 읽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온도 없는 서술이 가장 뜨거운 감정을 전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슬픈 책은 싫다”는 독자들이 가장 많이 예외로 두는 한국 소설이다.
”역사소설은 지루하다”—케미스트리 수업이 반박한다
역사소설이 독자를 가르치려 한다는 인상은 보니 가머스의 『케미스트리 수업』이 2022년에 거의 혼자 해체시켰다. 1960년대 초를 배경으로 화학자에서 요리 프로그램 진행자가 된 엘리자베스 조트를 따라가는 이 소설은 일단 웃기다. 진짜로, 지속적으로. 역사적 배경은 수업이 아니라 맥락이고, 소설의 동력은 엘리자베스 자신이다—뛰어나고, 까다롭고, 타협하지 않고, 그 모든 것이 점점 더 명확해지면서 깊이 인간적으로 느껴지는 인물. 50페이지를 읽어달라는 부탁에 응한 독자들이 결국 모든 사람에게 강추하는 책이다.
테일러 젠킨스 리드의 『에블린 휴고의 일곱 남편들』은 다른 방향에서 접근한다. 황금기 할리우드의 전설적인 배우가 자신이 선택한 기자에게 인생과 일곱 번의 결혼을 털어놓는 이야기인데, 왜 하필 이 기자인지—그 이유는 마지막 장에 가서야 드러난다. 화려한 스타 이야기처럼 시작해서 사랑과 정체성, 그리고 자신을 형성한 사람에게 우리가 무엇을 빚지고 있는지에 관한 이야기로 끝난다.
”SF는 어려울 것 같아요”—프로젝트 헤일 메리가 반박한다
SF는 배경 지식—물리학, 우주여행의 관습—이 필요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앤디 위어는 반대로 접근한다.
『프로젝트 헤일 메리』는 자신이 누구인지 왜 여기 있는지 기억을 잃은 채 우주선에 홀로 깨어난 남자의 이야기다. 소설은 그가 알아가는 과정이고, 과학은 정보가 아니라 서스펜스의 도구로 작동한다. 문제를 푸는 것이 흥미롭다는 느낌을 주는 드문 소설. 그리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 출발하는 이 소설에서 가장 따뜻한 관계 중 하나를 만나게 되는데—그것이 무엇인지는 스포일러이므로, 그냥 믿고 읽어보길 권한다.
베키 챔버스의 『성난 작은 행성으로 가는 먼 길』은 판타지를 선호하는 독자에게도 잘 맞는 SF다. 거대한 우주 갈등보다 터널 우주선 안에서 함께 사는 발견된 가족들의 감정 질감에 더 관심이 있는 소설. “아늑한 SF”라는 말이 정확하게 맞는다.
”논픽션은 읽기 싫어요”—소설처럼 읽히는 두 권
논픽션이 픽션보다 더 힘들다는 가정은 대부분 틀렸다. 최고의 논픽션은 가장 강렬한 픽션처럼 읽힌다. 이야기가 모든 것의 엔진이기 때문이다.
타라 웨스트오버의 『배움의 발견』(Educated)은 아이다호의 생존주의자 가정에서 정규 교육 없이 자란 여자가 결국 케임브리지에서 박사 학위를 받는 회고록이다. 장면 구성이 소설 수준이고, 긴장감이 픽션의 논리로 쌓이고, 지식이 해방이자 동시에 상실인 이야기는 어떤 장르의 책과 비교해도 지난 10년 최고의 이야기 중 하나다. “논픽션 안 읽어”라는 독자들이 며칠 만에 다 읽는 책이다.
미셸 자우너의 『H 마트에서 울다』는 한국계 미국인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음식을 통해 다룬다. 함께 먹었던 식사들의 맛과 질감과 냄새, 그리고 그 음식들 안에 담긴 문화와 사람을 자신의 몸 안에 살아있게 유지하려는 노력. 가장 정밀한 감정 문장들로 이루어진 책이며, 자우너가 잃은 것을 직접 경험하지 않은 독자에게도 작동한다—귀속감에 대해, 부모와 자녀 사이의 복잡한 사랑에 대해 쓴 책이기 때문에.
건너뛸 뻔한 책이 가장 중요한 책이 된다
이 모든 책들에서 반복되는 패턴이 있다. 독자들이 장르를 보고 넘겼다—그건 내 취향이 아니야, 그런 책은 전에 읽어봤어—그러다 믿을 수 있는 누군가의 권유에 50페이지를 읽었고, 책이 무언가를 바꿨다.
독서 인생은 길다. 가장 싫어한다고 생각하는 장르 안에 당신이 찾던 책이 숨어있을 수 있다. 그 사실을 알아낼 가치는 충분하다.
예상치 못하게 빠져든 책, 장르 편견을 깨준 인생책을 Bookdot으로 기록하고 친구들과 나눠보세요. 최고의 책 추천은 언제나 “네 취향 아닐 수도 있는데, 그냥 한번만 읽어봐”에서 시작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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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 판타지를 싫어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어떤 책을 추천하나요?
- 레이 바르두고의 『여섯 개의 까마귀』가 최고의 입문서입니다. 판타지이기 이전에 치밀한 케이퍼 스릴러이자 도덕적으로 복잡한 인물들의 이야기입니다. '판타지는 안 읽어'라는 독자들이 주말 이틀 만에 다 읽고 후속작을 주문한다는 게 진부한 말이 아닙니다.
- 로맨스 소설을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도 즐길 수 있는 책이 있나요?
- 에밀리 헨리의 『비치 리드』나 알리 해이즐우드의 『러브 하이포세시스』를 추천합니다. 두 작품 모두 연애 서사 이상의 깊이—자아 탐색, 직업적 고뇌, 유머—를 갖추고 있어서 '로맨스는 가볍다'는 편견을 가진 독자들이 가장 많이 바꿔놓는 책들입니다.
- 내 취향이 아닌 장르의 책을 어떻게 시도해볼 수 있을까요?
- 믿을 수 있는 누군가의 구체적인 추천을 따라가는 것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이 장르 한번 읽어봐'가 아니라 '이 책은 달라, 50페이지만 읽어봐'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말을 들어보세요. 50페이지 룰—50페이지를 읽기 전에는 판단하지 않는다—은 느린 시작의 명작에게 기회를 주는 동시에, 진짜 안 맞는 책은 죄책감 없이 내려놓을 수 있게 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