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앱과 단체 채팅방 사이 어디쯤에서, 사람에 대한 최악의 상상이 자꾸 더 그럴듯해 보이는 시기가 있다.
그럴 때 책 한 권을 읽고 나면 이상하게 마음이 풀린다. 세상이 괜찮다고 우겨서가 아니다. 이 목록의 책 대부분은 그러지 않는다. 슬픔과 잔인함, 고립, 시스템의 실패를 정면으로 본다. 그리고 그 밑바닥에서, 그럼에도 나타나는 사람들을 놓치지 않는다. 문을 두드리는 이웃, 낯선 이의 짐을 대신 들어주는 손, 말을 태우고 오지 마을까지 책을 배달하는 사서, 패소가 뻔해 보이는 사건을 포기하지 않는 변호사.
이건 연하장에 적힌 희망과는 다르다. 검증을 거치고도 무너지지 않은 희망이다. 여기 실린 책 중 몇 권은 실제 역사 속 참혹한 사건 한가운데 오래 머물다가야 그 빛에 도달한다. 그래서 믿을 만하다. 최악을 계산에 넣지 않은 책은 최선도 설득력 있게 말하지 못한다.
여기, 사람이 오늘 저지른 가장 나쁜 행동보다 더 나은 존재라는 걸 하나하나 증명해준 열두 권을 모았다.
무뚝뚝한 사람들의 진심
사람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변론은 종종 사람에게 가장 화가 난 인물에게서 나온다.
《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2012)는 “인류애를 회복시켜준 책”이라는 말을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소설이다. 그럴 만하다. 59세 오베는 아내를 얼마 전에 잃었다. 주차 규정에 집착하고 삶을 끝낼 계획까지 세워둔 사람이다. 그런데 옆집에 정신없는 젊은 가족이 이사 오면서 상황이 달라진다. 사다리를 빌리러 오고 트레일러 후진을 도와달라고 하고 부르지도 않았는데 음식을 들고 찾아오는 식으로 그들은 오베가 문을 걸어 잠그고 있는 걸 불가능하게 만든다. 오베는 매번 저항한다. 도와주려는 사람에게 쏘아붙이고 자기 루틴에 집착한다. 그 저항이 이 소설을 특별하게 만든다. 사람들이 착해서 좋은 일이 생기는 이야기가 아니다. 도와주기 어렵게 구는 사람을 사람들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이야기다. 불편한 호의가 하나씩 쌓여 어느새 살아야 할 이유가 되어 있다.
《해럴드 프라이의 놀라운 순례》 (레이첼 조이스, 2012)도 비슷한 발상을 길 위에 옮겨놓는다. 정년퇴직한 해럴드는 사랑 없는 결혼 생활을 이어가던 중 암으로 죽어가는 옛 동료의 편지를 받는다. 그는 즉흥적으로 답장을 직접 전하겠다며 영국을 걸어서 횡단하기 시작한다. 자신이 계속 걷는 한 그녀가 버틸 거라 믿으면서. 요트화를 신고 지도도 계획도 없이 나선 이 여정은 소설이 흐를수록 점점 더 커진다.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이야기를 완성한다. 그를 먹이고 재워주고 몇 킬로미터를 함께 걸어주는 낯선 이들이 대가 없이 나타난다. 그때마다 해럴드가 20년 넘게 외면해온 결혼과 상실의 진실이 한 겹씩 벗겨진다. 사람은 기회만 있으면 돕는다는 조용한 증거이자, 그 도움 자체가 제대로 슬퍼할 기회를 열어준다는 이야기다.
사랑은 다른 얼굴로도 온다
가장 설득력 있는 인간애의 초상이 때로는 인간이 아닌 존재의 눈으로 그려진다.
《클라라와 태양》 (가즈오 이시구로, 2021)의 화자 클라라는 외롭고 병약한 아이의 친구가 되도록 만들어진 인공지능 로봇이다. 클라라는 사람의 행동을 헌신적이면서도 이해하지 못한 채 관찰한다. 잔인함이나 지위에 대한 불안, 어른들이 벌이는 복잡한 사회적 게임은 이해하지 못하지만, 사랑만큼은 완벽하게 이해하고 그것을 위해 자신이 가진 전부를 내놓을 준비가 되어 있다. 이시구로는 이 외부자의 시선으로 사람의 다정함을 오히려 또렷하게 보여준다. 마치 외국어를 배우고 나서야 모국어가 새롭게 들리는 것처럼. 끝에 가서 이 소설이 다루는 건 결국 인공지능이 아니다. 누군가 나를 온전히 지켜볼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그 관심을 먼저 준 사람에게 우리가 갚아야 할 것에 관한 이야기다.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 (찰리 맥커시, 2019)은 이 목록에서 가장 짧다. 아마 가장 많이 인용되는 책이기도 하다. 손글씨와 그림으로 채워진 우화로, 네 명의 어울리지 않는 동행이 겨울 들판을 함께 걸으며 진짜 마음을 주고받는다. “작아지는 기분이 들 때 뭘 해?”라는 질문에 “큰 나무를 찾아서 등을 기대고 앉아”라는 답이 돌아온다. 누구나 기억하는 한 줄도 있다. “도움을 청하는 건 포기하는 게 아니야.” 이 동물들은 서로의 문제를 대신 해결해주지 않는다. 그냥 곁에 있고 좋은 질문을 던지고 자기도 무섭다는 걸 인정할 뿐이다. 읽는 데는 20분이면 충분한데 마음에는 몇 년을 남는다.
감상이 아니라 증거
이 두 권은 소설이 아니다. 연구와 경험을 근거로 삼아, 희망 쪽이 사람을 더 정확하게 읽는 방법이라고 주장하는 책들이다.
《휴먼카인드》 (뤼트허르 브레흐만, 2019)는 “사람은 원래 이기적이야”라는 말을 마치 정설처럼 던지는 사람에게 건네줄 책이다. 브레흐만은 그 주장의 근거로 쓰이던 유명한 사례들 — 스탠퍼드 감옥 실험, 키티 제노비스 사건, 런던 대공습 — 을 다시 파고든다. 실제 역사는 대중에게 알려진 것보다 훨씬 협력적이고 다정했다. 냉소가 더 잘 팔린다는 이유로 원래 연구자나 언론이 이야기를 비관적으로 왜곡한 경우가 많았다는 사실도 함께 드러난다. 근거가 탄탄하고 자료도 꼼꼼해서, 단순한 위로의 말이 아니라 인간 본성에 대한 우리의 기본 가정이 틀렸다는 진지한 역사적 논증으로 읽힌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브라이언 헤어·버네사 우즈)는 같은 주장을 진화생물학의 언어로 펼친다. 인간이 다른 종보다 뛰어난 건 힘이나 공격성이 아니라 협력하고 신뢰를 주고받는 능력이었다. 개와 늑대의 차이, 자기 가축화라는 개념으로 저자들은 친화력이야말로 생존 전략이었다고 설명한다. 두 책을 나란히 읽으면 인간이 이기적이라는 이야기가 왜 그렇게 오래 살아남았는지, 그리고 그 이야기가 왜 틀렸는지가 함께 보인다.
무너진 자리에서 지켜낸 존엄
가장 참혹한 순간 한가운데서도 존엄을 지켜낸 사람들의 기록이다.
《소년이 온다》 (한강, 2014)은 1980년 광주를 배경으로 한다. 국가 폭력이 절정에 달한 순간, 소설은 죽은 이들과 살아남은 이들의 목소리를 번갈아 들려준다. 눈을 돌리고 싶어지는 장면들이 있다. 그런데 그 폭력 한가운데서도 시신을 수습하고 유족을 위로하고 서로의 이름을 기억하려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 한강은 그 존엄을 미화하지 않는다. 다만 있는 그대로 기록한다. 국가가 짓밟으려 했던 것이 인간의 존엄이었다면, 이 소설이 끝까지 붙들고 있는 것도 바로 그 존엄이다.
《죽은 자의 집 청소》 (김완, 2020)의 저자는 고독사 현장을 정리하는 특수청소업체 대표다. 아무도 찾지 않고 오랫동안 방치된 죽음의 흔적을 치우는 일이 그의 직업이다. 이 책이 놀라운 지점은 따로 있다. 그 일이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 슬픔이라고 담담히 고백하면서도, 자리를 치우고 정리하고 유족에게 마지막 물건을 돌려주는 과정 전체를 존엄을 지키는 노동으로 그려낸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누군가를 끝까지 사람으로 대하는 이야기다.
작은 공간, 큰 관용
파운드 패밀리는 거창한 모험이 아니라 편의점이나 시골 마을 하나에서도 만들어진다.
《불편한 편의점》 (김호연, 2021)은 기억을 잃은 노숙인이 편의점 야간 알바로 일하며 주변 사람들과 서서히 엮이는 이야기다. 편의점이라는 공간은 한국에서 특별하다. 누구나 들어오고 누구도 이유를 캐묻지 않는 곳. 각자의 방식으로 고립되어 있던 사람들이 의도치 않게 서로에게 스며드는 과정을 이 소설은 조용히 따라간다. 읽고 나면 늦은 밤 동네 편의점이 조금 다르게 보인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은 1985년 아일랜드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석탄 상인 빌 펄롱이 수녀원에 갇힌 소녀를 우연히 목격하며 겪는 며칠을 그린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크지 않다. 하지만 그 작은 선택이 자신의 안온한 삶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는 눈을 감지 않는 쪽을 택한다. 짧은 분량 안에 큰 용기를 눌러 담은 소설이다. 세상을 바꾸는 친절은 대부분 이렇게 작고 사소한 결정에서 시작된다는 걸 보여준다.
세대를 건너는 돌봄
마지막 두 권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또는 사람이 땅에게 건넨 것이 얼마나 오래 이어지는지를 보여준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미치 앨봄, 1997)은 루게릭병으로 죽어가는 은사 모리 슈워츠를 매주 화요일마다 찾아간 제자의 기록이다. 모리는 자신의 죽음을 마지막 수업으로 삼아 사랑과 용서, 후회, 정말 중요한 것을 이야기한다. 앨봄은 그 가르침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못했던 자신의 저항까지 솔직하게 남긴다. 몸이 무너져가면서도 오히려 더 너그러워지는 사람을 지켜보는 불편함도 함께. 죽어가는 한 사람이 무엇을 나눠주기로 했는지, 그리고 그것이 받은 사람을 얼마나 바꿔놓았는지에 관한 책이다.
《향모를 땋으며》 (로빈 월 키머러)의 저자는 식물학자이자 아메리카 원주민 포타와토미 부족의 일원이다. 원주민의 생태 지혜와 과학 훈련을 엮어 호혜라는 개념을 오래 풀어낸다. 주기만 하고 받지 않거나 받기만 하고 돌려주지 않는 관계는 땅과의 관계든 사람과의 관계든 오래가지 못한다. 제대로 딴 향모가 오히려 더 무성하게 자란다는 이야기, 감사에서 시작하는 세계관 이야기가 책 곳곳에 있다. 이 목록의 다른 책들처럼 곧장 ‘인류애’를 말하는 책은 아니다. 하지만 다 읽고 나면 관대함이란 무엇인지, 무언가를 혹은 누군가를 오래 돌본다는 게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 책들은 잔인하거나 무너진 것들을 못 본 척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대부분 그것을 정면으로 본다. 다만 그 옆에 늘 다른 것도 함께 있다고 말한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서로를 돕기로 하는 사람들이 조용히, 그리고 꾸준히 있다는 사실이다. 순진한 낙관이 아니다. 자정 넘어 피드를 넘기다 보면 가장 먼저 잊어버리는 증거의 나머지 절반이다. 이 책들은 그 절반을 다시 눈앞에 가져다 놓는 일을 제법 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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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 인류애를 회복시켜준다는 책 중 가장 먼저 읽을 만한 책은?
- 프레드릭 배크만의 《오베라는 남자》를 추천한다. 아내를 잃고 세상과 담을 쌓은 노인이 이웃들의 끈질긴 참견 덕분에 조금씩 다시 살아나는 이야기다. 비슷한 감동을 논픽션으로 원한다면 뤼트허르 브레흐만의 《휴먼카인드》가 있다. 인간이 원래 이기적이라는 통념을 역사적 근거로 뒤집는다.
- 냉소를 걷어내고 사람을 다시 믿게 해주는 논픽션도 있나?
- 있다. 《휴먼카인드》는 인간의 이기심을 증명한다고 알려진 유명한 실험과 사건들을 다시 파헤쳐, 실제로는 훨씬 다정한 결말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브라이언 헤어와 버네사 우즈의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진화생물학의 언어로 같은 주장을 한다. 협력하는 종이 결국 살아남았다고 말한다. 두 책 다 감상이 아니라 근거로 설득한다.
- 낯선 사람의 친절을 다룬 소설을 추천해줄 수 있나?
- 레이첼 조이스의 《해럴드 프라이의 놀라운 순례》는 편지 하나를 전하러 영국을 걸어서 횡단하는 남자와, 그 길에서 그를 먹이고 재워주는 낯선 사람들의 이야기다. 김호연의 《불편한 편의점》은 한국 독자에게 더 가까운 예다. 누구나 들어오고 아무도 이유를 묻지 않는 편의점이라는 공간에서, 서로 무관한 줄 알았던 사람들이 조용히 연결된다.